마녀 아줌마로 거듭나다
그림을 그리면서 가장 부러웠던 건 잘 그리는 게 아니라 지우개 없이 자신의 상상이나 생각을 슥삭슥삭 그리는 사람들이었다. 나이 들어 영어공부를 한 이유가 영어 소설책을 한국어 소설책 읽듯 쓱쓱 읽고 싶었던 것과 비슷하다.
처음 화실을 다닐 때는 표현을 익히는 게 목표였으므로 언제나 정물을 앞에 두고 똑같이 그리는 소묘연습을 했고 모작을 하다 보니, 정물이든 사진이든 대상과 똑같이 그려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렸는데, 그걸 깨지 못하는 나를 이끌어줄 사람은 없었다. 선생님도 그런 건 스스로 깨우쳐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이므로, 나를 그저 "예술적 재능"을 타고나지 못한 아줌마여서 한계가 있다는 식으로 대했고, 그게 사실이고 나도 인정하지만 내심 조금 서운했다. 그때부터는 번역일이 바쁘면 화실에 가지 않고 일에만 매달리다가 다시 다니다가를 반복했던 것 같다.
번역과 수업준비에 매달리던 어느날, 그림에 미련이 남았던 나는 꼬마마녀를 그려보았다. 어린 시절에 안개를 먹으면 마법사가 된다는 말을 듣고 안개가 짙게 깔리면 그걸 먹어보려고 했던 기억도 났고, 세상에 살지만 완전히 섞이지 못하는 모습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그때는 고양이가 아닌 강아지를 데리고 다니다가 이후 고양이로 바뀌었다).
소재는 어린 시절에 하고 싶었던 것을 가장 먼저 그렸다. 하늘을 날거나 바다에서 놀거나 혹은 어릴 때 배우고 싶었지만 몸이 약하다는 이유로 허락받지 못한 스케이트 타기 등등이었다.
번역하다가 너무 힘들어서 글자에 깔려버린 모습도 상상하고, 감기 걸렸을 때 누워있는 모습도 그렸다.
나뭇배를 타고 바다를 항해하거나 별을 따서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기도 했고, 높은 산에 오르기도 했다.
소재도 그리 풍성하지 못했고 몸동작을 그리는 데에도 익숙치 않아서 한계는 있었으나 나름 열심히 그리려고 했는데, 이 그림들은 몇 년 뒤 아이패드로 디지털 드로잉을 할 때 밑그림으로 사용되었다. 이제 다시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소망과 함께 앞으로도 계속 시도해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