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 아줌마의 세상
1.
한마디로 더웠다. 태어나서 지금까지는 겨울이 가장 힘든 계절이었는데 이젠 여름에 그 타이틀을 내줘야할 것 같다. 더위 자체를 못참겠다거나 땀을 뻘뻘 흘리는 게 아닌데도, 나의 허약한 위장은 제풀에 쓰러져 움직이길 거부한다. 그렇다고 소화 자체가 안되는 게 아니고, 들어온 영양분의 처리능력이 상실된 거 같다. 내 몸이라는 공장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기분이다. 해마다 더워진다던데, 내년에는 또 어떻게 살아가지?
2.
따라서 아무 곳에도 다녀오지 못했다. 아침에 나가더라도 점심이 되어 온도가 체온 이상으로 올라가면 정말이지 심장이 빨리 뛰고 현기증이 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이제는 그 상태를 견딜 수 있는 나이가 아니기에 그냥 얌전히 서식지에 박혀서 새벽운동만 계속했다. 그나마 헬스장이 연중무휴이고, 새벽에 걷거나 뛸 수 있는 장소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만약 지난번 서식지인 강남 한복판, 채광 안되는 오피스텔에 있었더라면 진짜 너무 힘들었을 것 같다. 아니 거의 초죽음을 면치 못했겠지.
3.
살아가면서 34세와 60세에 급노화를 겪는다고 했고, 이제 두번째 급노화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그게 맞는 거 같다. 중력을 이기지 못하는 피부는 하향곡선을 그리며 쳐지고 흰 머리카락이 하나둘 나타난다. 그나마 우리집 유전상 흰머리가 많지 않는 탓에 염색비용은 많이 절감한 편이긴 하다. 그렇다고 안늙는 건 아니지. 눈검사를 했더니 백내장이 시작되었다는 말을 들어야하고, 몸에는 지방이 없어도 간에 약간의 지방이 껴있다고 한다. 어딘가 아프거나 불편해서 병원에 가면, 모두 나이탓이라는 '진단'이 내려진다. 이거야 원...
4.
그림 그리기는 느리게 진행 중이다. 꼬물꼬물 하면서 나름 깨달음도 얻고 있는 건 맞다. 다만 너무 느려서 뭐가 얼마나 늘었는지 실제로 달라졌는지 잘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이거 해서 뭐가 되것어? 의심이 고개를 든다. 하지만 지금 포기하기엔 너무 이른 감이 있고,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보고 난 다음에 돌아서도 괜찮을 것 같아서 걍 가는 중이다. 갈 때까지 가봐야 포기를 해도 미련이 남지 않기 때문이다.
번역도 그랬다. 모든 것을 쏟아넣었다고 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있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대부분 한 것 같다. 그랬기 때문에 너무 물려서 더 이상 삼킬 수 없다고 생각한 순간에 도달 했을 때 주저없이 내려놓고 돌아섰고, 뒤돌아보지 않을 수 있다. 그림도 그런 거겠지. 약간의 차이가 있다면 번역은 내 생계수단이었던 것에 반해 그림은 노후의 친구 같은 거다. 속편히 동행하다가 정 아니다 싶으면 헤어지게 되겠지.
한편, 그림에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고 해서 약간 희망을 품긴 했다. 그래도 표현력은 있어야 하는 거 같은디, 미술 전공자도 아니고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닌 아줌마가 쉽게 익힐 수 있는 건 아니다. 진짜 궁금하다. 내 그림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나도 한번쯤 저공비행이라도 좋으니 날아볼 수 있는 걸까?
5.
그동안 더위를 피해서 집콕 방콕 하다가 정말 오래간만에 단체 트레킹을 따라 갔다. 그런데 어제는 완전 대실망이었다. 사실 여행사 당일 트레킹 코스가 가성비도 뛰어나고 해서 꽤 자주 이용했는데, 가끔 초보 가이드들을 만나면 여행을 절반이 날아가버린다. 사람의 성격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산 좋아하시는 분들이라 모두 소탈하고 인간미가 있다. 다만, 가이드라는 본분을 잊어버리고 그냥 친구들이랑 마실 오는 기분으로 오시는 건지, 시간 배분을 제대로 못하거나 변수가 생겼을 때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그런 실수에 대해 그냥 슬쩍 넘어가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고 이해가 안되는 건 아니지만 기분이 썩 좋은 건 아니다. 가이드 수입이 적어서 이직을 많이 하는 건지, 으쨌든 그렇다.
따라서 앞으로는 그냥 나 혼자 트레킹을 다니는 게 낫다는 결론이다. 나홀로 뚜벅이 트레킹 코스를 소개하는 유튜브 중에서 골라서 다니는 게 훨씬 나을 듯. 난 역시 혼자 다녀야해...흑흑!
6.
그나저나 올 8월은 근육통과 함께 삭제된 기분이다. 도수치료도 가격대비 그리 효과가 좋지 못하고, 근데 가만보면 일부러 치료를 늘이는 기분도 든다. 이정도 통증이면 한번만 받아도 확 좋아지는 건데, 시간만 늘이는 기분이다. 아무리 실손보험이 있어도 그렇지, 실손보험 남용하는 건 장기적으로 모두들 손해일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