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하지만 소중한 순간

마녀 아줌마의 세상

by Stella

어린 시절에는 어른이 되면 야단안맞고, 학교 안가고, 공부안해도 되니 좋을 것 같았다. 특히 '라떼'의 국민학교 시절은 한없이 계속될 거 같아서, 시간은 왜 이리 더디 가는지! 흐름이 약간 빨라진 건 대학교를 졸업한 이후인 듯 하고, 30대가 호로록 지나가더니 40대 역시 블랙홀로 빨려들어갔다. 그 뒤부터는 완전 일사천리이고, 이제는 날아가는 시간의 끝자락에 매달린 채 끌려가는 중이다. 그래, 이젠 망설일 시간이 없어. 하고 싶은 거 중에서 당장 할 수 있는 건 그냥 해치우는 거고, 하루하루 소중하게 보내고 싶다.


1.

2025년 가을이 바람처럼 지나가는 중이다.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고, 가끔은 청명한 하늘을 슬쩍 보여주기도 하지만 이상기후라는 명목으로 상당히 자주 비를 데려온다. 하늘이 하는 일이라 인간이 제어할 수 없다. 그 와중에 할 수 있는 건, 맑은 하늘이든, 어두운 하늘이든 그냥 받아들이면서 나름의 방법으로 주어진 계절을 즐기는 것 뿐이다. 그래도 매 순간이 소중하니까.


2.

유난히 기동력이 떨어지는 집 분위기로 인해, 여자가 밤에 나돌아다니면 안된다는 완고의 벽에 부딪혀서, 한참 젊을 때는 여행을 다니지 못했다. 대학을 다닐 때도 MT 한번 가려면 일주일을 싸워야했다. 그 이후에도 번역 프리랜서라는 직업 덕분에 동료도 없이, 집콕 방콕으로 일하면서 스스로 집순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내가 지닌 역마살이 어마어마하다는 게 결국은 밝혀졌고, 그 증세는 지금도 점점 강해지고 있지만, 진실로 오랫동안 집순이라는 착각에 빠져 살았다.


만개한 역마살과 더불어 찾아온 여행의 즐거움. 사실 나홀로 뚜벅이가 집 떠나는 건 마냥 즐거운 건 아닌데, 그래도 떠나는 이유 중 하나는 여행이 나의 사고방식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다. 집 떠나면 개고생이고 계획은 마치 틀어지라고 있는 듯 변수의 연속이다. 게다가 나홀로 뚜벅이는 늘 우왕좌왕 좌충우돌이어서, 이젠 30-40분 정도 버스 정류장에 앉아있어도, 한 시간쯤 더 걸어야해도, 예약한 뭔가에 차질이 생겨도, 갑자기 날씨가 나빠져도, 사는 게 다 그런거지 모, 짜증을 내봐야 내 손해지, 완전 엉망이 되지 않는 게 그저 다행이고 다치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기대한 것보다 아름다운 전경을 보거나, 비가 올 줄 알았는데 갑자기 개이거나, 우연히 맛있는 길거리 간식이라도 찾으면 그저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 저절로 든다. 편하고 익숙한 평소의 생활이 아닌 불편함이 주는 보상이라 믿으며, 좀 더 젊었을 때 알았다면 좋았겠지만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다.


3.

몇 년만에 다시 시작한 그림 그리기. 약간 생소한 아크릴 물감과 친해지려고 노력했지만 성과는 그리 좋지 못하고 딱히 마음에 들게 완성된 것도 없다. 그래도 그림에 몰두하는 순간 만큼은 무척 소중하다. 아마 작품이라 불릴만한 것을 완성하는 것보다 색을 칠하는 행위 자체를 좋아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 와중에 알게 된 것. 그림을 그리기 전에 관찰을 잘 해야 한다는 거. 물론 예전부터 들었던 말이고, 소묘를 꽤 많이 했기 때문에 스스로 관찰을 했다고 믿었다. 근데 그게 아니었다. 관찰을 잘 하라는 건, 대상을 보면서 어떻게 표현할 지 결정하고 완성된 모습을 상상하라는 건데, 나만의 해석을 해내야 하는 건데, 그걸 안했다는 거다. 아니지, 정확히 말하면 그게 뭔지도 몰랐다고 인정할 수 밖에 없다. 그런 과정을 빼먹고 나만의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했으니, 아무 것도 모르고 헛소리만 한 셈이다. 하면 할 수록 모르는 게 늘어나는 황당한 상황이지만 그래도 뭔가 할 수 있는 게 다행이긴 해.


4.

그렇다고 딱히 중요하거나 의미있는 일을 하는 건 아니지만 과거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 하고 싶은 것들을 눈치안보고 한다는 거다. 누군가의 응원도, 찬성도 필요없다. 주변 사람들에게 안하고 후회하는 것 보다 해놓고 후회하는 게 더 낫다.


아래는 성큼 다가온 가을을 담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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