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 아줌마의 세상구경
흐린 날은 서식지 콕!이 정답이지만 드물게 한번씩 오는 '맑고 청명한' 하늘만 기다릴 수도 없고, 인생도 맑음과 흐림과 폭풍우와 태풍이 다 섞여서 오는 거니까 흐린 날 정도면 고맙게 생각해야지 싶어서 새벽에 눈을 뜬 김에 후다닥 챙겨 나왔다. 행선지는 송추계곡. 어린 시절 계곡에서 물놀이를 했던 기억이 있는 곳이다.
과거에는 대중교통으로 가기 힘들었지만 이제는 GTX-A 노선과 교외선과 지하철과 버스의 힘으로 서울 어디서든 갈 수 있는 장소로 등극했다. 내 경우, 현재 서식지에서 지하철과 버스의 조합 만으로 약 1시간 정도면 도착하는데, 어쨌든 1호선 의정부역 ⇨ 교외선 환승 ⇨ 송추역 도착하고, 의정부역에서 버스를 타도 된다. 서울역 ⇨ GTX-A 로 대곡역 ⇨ 교외선 환승 ⇨ 송추역까지 가는 방법도 있다. 이 정도면 뚜벅이에게는 껌이지!
일단 송추역에 도착하면 길 건너 골목으로 들어가는데, 제 13구간 송추마을길 혹은 송추 1 / 2 주차장을 찾아오면 된다. 나처럼 너무 이른 시간에 가는 게 아니라면 사람들 가는 방향 따라가면 될 거 같고, 요즘은 뚜벅이를 위한 네이버 길찾기 혹은 차량 네비게이션 너무 좋으니 쉽게 찾을 수 있다. 계곡 초입의 크고 유명한 카페인 헤세의 정원을 찾아도 될 듯! 잠깐 들어갔는데 정말 멋지게 꾸며놓았다.
송추계곡으로 가는 길이다. 하늘이 맑다면 사진이 훨씬 예쁘게 나왔을 터이나, 흐린 날의 신성한 기운도 좋았고 실제로 보면 사진보다 훨씬 차분하고 아름답다.
계곡 입구. 여기에 화장실이 있다. 이후에는 주차장에 있는 듯 하지만, 여기서 들렀다 가는 거 추천한다.
길 따라 올라가다보면 송담폭포가 나온다. 요즘 비가 자주 오더니, 수량이 엄청났다. 여기 뿐 아니라 송추계곡 전체에서 요란한 물 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사람들의 소음과는 달리 자연의 소음(?)은 아무리 들어도 질리거나 힘들지 않다.
송담폭포을 보고 돌계단을 올라 다시 길을 가다보면 숨터 가는 길 표지판이 있고, 그리 크지 않은 휴식 & 명상 공간인 숨터가 나온다. 잠시 쉬다 계속 가면 길 끝자락이 송암사라는 절과 이어진다. 아래 사진들 가운데 하늘이 파란 사진은 돌아올 때 잠시 햇살이 반짝할 때 찍은 거다.
숨터에서 좀 더 올라가면 쉼터가 나오는데, 편안한 길은 거기서 끝난다. 아래 맨 오른쪽 사진에 나오는 다리를 건너면 거기서부터는 완전 암석 바닥, 북한산 본연의 정체가 드러난다.
최소한 내게는 쉽지 않은 길이다. 여기서 스틱 장갑 꺼낼 수 밖에. 물론 그냥 성큼성큼 가는 사람들도 많다. 송추계곡 입구부터 약 1 킬로미터 가면 되는데, 산길 1킬로미터는 도로와 달리, 내 경우 한시간 반에서 심할 때는 두 시간 걸릴 때도 있다.
여기서부터는 사진도 제대로 못찍었고, 사실 찍어봐야 비슷하다. 바위와 돌과 계곡이 계속 나온다. 완전 울퉁불퉁 돌바닥이고 어느 구간은 물에 젖어 미끄럽기도 해서 조심조심 걸었다. 조금만 삐끗해도 최소 전치 2주는 나올 판국이므로 그저 조심 또 조심하면서 아래의 거대한 암석이 있는 지점까지 올라갔다. 사진 한 장에 안담길 정도로 큰 바위다.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암석에서 약 4백 미터만 가면 송추계곡인 거 같은데, 길이 험하고 바닥에 물이 많이 흘렀다. 물론 조심조심 가면 못갈 거 같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돌아서는 게 맞는 것 같았다. 날씨만 좋았어도 그럭저럭 갔을 거 같은데, 물 때문에 길이 너무 미끄럽게 보였다. 나홀로 아줌마가 조금만 다쳐도 구급대 불러야할 판이니까 괜히 욕심 냈다가 바쁜 구급대원들 귀찮게 하지 말아야지... 미련없이 돌아섰다.
참고로 송추폭포 가는 길에 사패산과 사패산 능선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고, 송추계곡길 초입에는 우이령으로 가는 길도 있다. 어쨌든 여기는 북한산 국립공원이므로!!!
돌아오는 길에 찍은 사진들.
갈때와는 달리 날이 살짝 개이기 시작했다. 아래 왼쪽은 이끼로 뒤덮힌 암벽이 예뻐서 찍어봤다.
그리고 시원한 물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