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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lla Nov 30. 2023

번아웃 효과

마녀 아줌마의 세상살기

"달리는 호랑이 등에 올라타야해. 안그러면 뒤처지거나 잡아먹힐 거야" 

요즘처럼 모든 게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딱 맞는 조언이다. 상황을 잘 읽고 기회를 잡는 동시에 한번 가면 다시 되돌아오지 않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에도 좋은 방법이다. 그렇지만 나처럼 호랑이 등에 안정적으로 올라타기는 커녕 뒤늦게 꼬리 끝에 달린 털 한올을 겨우 붙잡은 채 질질 끌려가는 사람에게는 힘든 방법이고, 그렇게 달려간 건지 끌려간 건지 모를 세월을 보내고 이제 쥐고 있던 호랑이 꼬리털을 놓아버렸고, 궁금해하는 지인들에게는 간단하게 '번아웃'되었다고 대답했다.

 

유행처럼 번진 '번아웃'

요즘 30대에도, 40대에도 번아웃이 왔다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 중 진짜 번아웃은 드문 거 같다. 단순히 출근하기 싫거나 일하는 게 재미가 없는 것과 진짜 번아웃은 구분해야 한다. 나도 마지막 삼 년 정도는 느무느무 힘들긴 했지만 '완전 소진'된 건 아니었다고 고백할 수 밖에. 그저 이삼 년 더 해봐야 '경제적'으로 그리 이득될 게 없길래 그만둔 게 크다. 갚아야할 빚이 있다거나 집안을 먹여살려야 했다면 '번아웃'은 사치에 불과했겠지. 실제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벌어진 일들 때문에 투잡 쓰리잡을 밤낮으로 뛰는 사람들도 많으니 그들에 비하면 무척 편하게 살아온 셈이어서 감히 '번아웃'을 입에 올리지 못한다. 운이 좋았는지 몰라도, 생각해보면 아주 사나운 세상은 아니었고, 그건 감사해야한다.


번아웃이든 아니든...

어쨌든 맞이한 현실은 내 예상과 크게 다른 건 아니었다. 무언가 재미나게 하다가도 갑자기 허망해지는 순간이 찾아오고, 기운이 넘치다가도 축 처져 버리기도 하고, 문득 외로움도 느낀다. 호랑이 등에서 맛보는 힘듦과 내려온 이후의 힘듦은 종류가 달라서 비교 불가다. 사람에 따라 차라리 일할 때가 덜 힘들 수도 있으니까. 단지, 등에 타고 있든 내려오든 상관없이 자신이 마주한 현실에 적응하는 게 더 중요하고 지금부터는 그것이 나의 현실이다.


천천히 걸으면 새로운 게 보인다고 하던데, 무엇이 보이는 지는 사람마다 다르고 예상과도 다르다. 처음에 나는 서식지 한구석에서 그림에만 몰두할 생각이었으나, 막상 내 그림체를 찾으려고 하니 텅텅 빈 내게서 나올만한 것도 없다는 게 문제여서 일단 디지털 드로잉으로 살짝 방향을 돌렸다. 


글쓰는 건 아예 생각조차 안했던 분야였으나 워낙 말재주가 없어서 그런지, 말하기 보다는 문자를 가지고 노는 걸 예상보다 더 좋아하더라. 쓰다보니 생각도 정리되고 쓰고 싶은 내용도 많아진데다 디지털 드로잉이 합쳐져서 더 재미있는 거 같다.


잠자던 역마살도 깨어났다. 혼자 처박혀서 하루 열 시간도 번역했고 친구도 많지 않아서 내가 집순이인 줄 알지만 실제로는 말띠 역마살을 '지대로' 타고 난데다, 장롱면허 뚜벅이기에, 걷는 것을 좋아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 안그랬으면 힘들었을거다.


나홀로 뚜벅이 숙박 여행에도 익숙해지는 중이다. 운전 가능한 지인과 함께 가면 편하고 좋겠지만 뭔가 빠진 느낌이 들어서 혼자 당일치기로 다니기 시작했다. 숙박 여행은 막상 하려고 들면 막막하고 귀찮은 건 사실이나 일단 시작하면 재미가 있더라. 


지금까지 산보다는 강을 더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산을 더 좋아하더라. 억지로 끼워맞추자면,사주에 나무가 모자란다고 하더니, 그래서 그런가?  


지금 나열한 항목들도 시간이 흐르면 변하거나 삭제되거나 다른 내용이 추가될 수 있다. 늘 변한다는 거다. 그런데 너무 빨리 달리면서 멀티태스킹을 하면 자신이 원하는 게 뭔지 알기 힘들다. 그냥 천천히 하나씩 하다보면 내가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좋아하는 지 알게 되는데, 모든 게 시간이 걸린다.


무조건 느리게 가는 게 정답은 아니다. 특히 이삼십대에 그렇게 하다가는 '무책임'하다는 말을 들을 게 뻔하므로 치열하게 살 때는 살아야겠지. 처음에 정신없이 달려간다고 해도 세상도 변하고 나도 변하므로 스스로에게 맞는 속도를 조절할 필요성을 인지하고한번 결정했다고 해도 그것만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거. 젊을 때 모든 게 결정되는 게 아니며 자신을 찾는 여정은 눈감을 때까지 계속 된다는 거다. 


내게 남은 시간이 어느 정도이고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모르지만 갈 수 있는 곳까지 가봐야지! 솔직히 말하자면, 무척 궁금해. 과연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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