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tella Mar 15. 2024

루틴 깨부수기

마녀 아줌마의 세상살기

'생활규칙'이라 해도 무방하나 요즘에는 '루틴'이라고 하더라!


규칙적인 생활을 하기 힘들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 반대여서 답답할 정도로 규칙적이다. 평생 나홀로 일하고 생활했기에 나름의 규칙을 따르는 게 중요했으니까. 사람들은 흔히 '프리랜서 번역자'라고 하면 자유로움을 떠올린다. 밤새워 일하고 늦게 일어나고 기분나면 경치 좋은 곳에 가서 커피 한잔 즐기다가 다시 밤에 일하는 사람이라고 여겨서, 나 역시 '다른 사람에게 치이고 않고, 니 맘대로 일하니 얼마나 좋냐!'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과연 그럴까? 월급쟁이들은 휴가와 병가와 보너스와 퇴직금과 각종 보험 혜택이 있지만 프리랜서는 일하면 돈 벌고 안하거나 못하면 수입 제로이다. 일하는 시간도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고 하지만 일이 열맞춰서 일정하게 들어오는 것도 아니다. 일이 많을 경우에도 강철체력이 아닌 다음에야 밤낮이 뒤바뀌거나 불규칙적인 생활은 오래 갈 수 없고, 만약 그런 체력을 지녔다고 해도 젊을 때 몇 년 정도 버틸 수 있을 뿐, 삼십대 중반만 되어도 힘들거다. 


저질체력의 표본인 나는 말할 것도 없지. 체력 손상을 막기 위해, 나아가 살아남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 무조건 헬스장 - 아침 일 - 점심 - 오후 일 - 저녁 - 저녁 일 - 잠자는 하루를 반복했고, 주말에도 거의 비슷하게 살았다. 그렇게 삽십년을 살다 보니 지겨우리만큼 건전(?)한 생활 속에 스스로 갇힌 꼴이 되었다.


'어느 정도가 '적당히' 일까?


아무리 좋은 것도 과하면 탈이 나는 법이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건 좋은 게 분명하고, 대략적인 규칙은 지켜야 하지만 세세한 부분까지 점령하면 집착으로 변하는 게 느껴졌다. 예를 들어 헬스장에서도 항상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운동기구를 사용하고, 똑같은 자리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똑같은 샤워기를 사용한다. 산책이나 여행을 가도 귀가 혹은 취침시간을 지키기 위해 마음이 바빠진다. 심지어 매일 새벽 운동하는 습관 때문에 장기 여행도 망설이게 되니 내가 봐도 주객전도,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래서 결심했다. 비록 습관을 고치려면 최소 삼년은 걸린다고 하지만, 스스로 답답하다고 인정하는 두가지 부분에서 최소한 노력해 보기로. 그래도 운동은 여러가지 이유로 반드시 해야 하는 게 맞고, 새벽에 가는 것도 변함이 없지만 운동 순서 등등은 상황에 따라 바뀌어도 신경 안써야지. 만약 여행 등의 이유로 헬스장에 못가는 상황에서도 할 수 있는 맨몸 운동법에 중점을 두기로 했다. 이건 내 몸과 의지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가능한 거니까! 실제로 요즘 맨몸 운동으로 조금씩 옮겨가보니, 생각보다 효과가 좋더라. 


산책 혹은 여행을 할 경우에도 돌아오는 시간을 일부러(!) 무시하기로 했다. 뚜벅이로 다니기에 대중교통을 이용해야하고 서울을 조금 벗어나면 버스 연계시간에 신경을 써야 해서 마음이 바빠지는데, 가끔은 내가 왜 이래야 하는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어쩌면 며칠 후에 떠날 8박 9일짜리 여행이 도움이 될지도 몰라. 이 기간 동안은 지금의 생활방식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을 테니까. 일상의 루틴에서 잠시 벗어났다가 돌아와도 세상과 나는 멀쩡하게 잘 돌아간다는 사실을 인지할 계기가 될 수 있을 듯하다. 


누군가는 이게 대체 뭐가 중요하냐고, 자잘한 습관 조금 바뀐다고 뭐가 달라지냐고 되물을 지 모른다. 그런데 살아보니 자잘한 게 중요했다.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모여 커다란 나를 형성하는 것 같았고, 아무리 나를 바꾸고 싶어도 하루아침에 전체를 완전히 바꾸는 건 불가능하므로, 작은 것부터 시작하는게 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믿는다. 


또한 나이 들면 오히려 규칙적이고 안정된 생활이 더 좋은 거라고 할 거고 그게 틀린 말은 아니지만, 매일 똑같은 방식으로 살다 보면 점점 더 변화를 무서워하게 되고 귀차니즘에 빠지게 된다. 어른이 아이보다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고 느끼는 이유는 자극이 적고 변화도 없고 호기심도 사라지기 때문이라는 말에도 수긍이 간다. 적극적으로 변화를 수용하는 사람의 시간이 더 늦게 흐른다고 하므로 나를 상대로 시험해보기로 했다. 꽉 막히고 답답한 노인네가 되지 않길! 


성장과정에서 이런 저런 판단력을 익혀야 하는데, 우리나라 교육은 대학입시에 몰빵이고 거기에 무조건 많이! 열심히!가 좋은 거라는 인식에다가 개인적 성격까지 더해져서 브레이크가 고장나는 바람에 멈춰야 하는 지점을 못찾는 거 같다. 젊어서 못 배운 거 나중에 배우려니 힘들긴 하네! 





작가의 이전글 괴산 산막이길-수옥폭포-활옥동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