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은 죽음의 문턱을 향해 한 발 한 발 걸어가고 있었다. 수일이 지나도 원인을 찾지 못한 의사는 어머니와 동생에게 나의 죽음을 준비하라는 뜻을 내비쳤다.
20대 중반의 여름, 타지 생활을 하던 나는 오랜만에 본가에 갔다. 부모님은 여느 때처럼 반갑게 맞아주셨고, 동생은 장난 가득한 표정으로 반가움을 표현했다. 가족과 단란한 주말을 보낸 후, 평일이 되었는데 몸살기가 느껴졌다. 쉬면 금세 회복하는 체질이라 '오랜만에 실컷 잠이나 자자.' 생각했다.
나는 오후가 되어서도 여전히 깔아져 있었다. 도통 기운이 나질 않았다. 퇴근하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곤 식사를 해야 힘이 난다 하셨지만 먹는 것조차 힘들었다. 복통을 느끼며 화장실에 간 나는 시야가 검게 변하며, 정신이 혼미해져 갔다. 아득해지는 정신을 부여잡고 소리쳤다.
"병원... 병원에 가야 할 거 같아요~!"
혼이 서서히 빠져나갔고 몸을 가누기가 힘들어졌다. 평소 놀라는 일이 잘 없는 아버지의 얼굴에는 놀란 표정이 역력했다. 누구의 손을 잡았는지도 모른 채 차에 올라타 응급실로 향했다.
응급실 의료진들은 내 체온을 측정하고, 손등에서 혈액을 채취했다. 잠시 후 돌아온 의사는 손등 혈액만으로는 부족한지 발등에서 혈액을 채취해 갔다. 수액 바늘을 꽂고 있으니 조금 정신이 돌아왔고, 그제야 상한 것을 먹지는 않았는지 의사의 질문이 날아왔지만 기억상으로는 그런 일이 없었다. 열이 높고, 검사 결과가 좋지 않아 입원이 결정됐다.
다음 날 아침 담당의가 방문했다. 몸은 어떤지 물었고, 원인이 나오지 않았으니 쉬면서 기다리자는 말을 했다. 며칠이 지났지만 정확한 병명이 나오지 않았다. 높은 간 수치에 대략적인 짐작만 할 뿐이었다. 어느새 간 수치는 3,000~4,000을 육박했고, 몸과 눈은 노란 황달기가 끼어 있었다.
매일 아침 찾아온 다른 얼굴의 간호사들은 내 팔에 바늘을 꽂고는 붉은 피를 수집해 갔다. 똑같은 바늘이지만 느낌은 매번 달랐다. 바늘이 느껴지지 않을 때도 있었고, 혈관이 꼬이는듯한 통증을 느끼는 때도 있었다. 경험이 적은 한 간호사는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며 수차례 바늘을 꽂기도 했다. 실험 대상이 된 나는 팔뚝에 바늘 자국이 더해지는 만큼 이 간호사가 두려워지고 있었다.
의사는 형사가 되어 범인을 찾아내려 했지만 범인은 쉽사리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의사는 나 몰래 어머니와 동생을 불렀고, 은연중 내 죽음을 준비하라는 뜻을 내비쳤다. 어머니와 동생은 불안, 걱정, 분노 등 복잡한 감정들이 뒤엉켰다. 답답한 현실 속에 아버지는 서울아산병원으로 옮기기 위해 알아보셨다. 여전히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 범인은 서서히 나를 무너뜨리고 있었다.
며칠 뒤, 원인을 찾아냈다. 급성 A형 간염이었다. 담당의는 움직이지 말고 무조건 쉬라는 말을 건넸다. 원인이 밝혀지자 나도 가족들도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병명을 알고는 병원은 옮기지 않기로 했다. 2주라는 시간 동안 가족의 보살핌과 간절한 기도로 죽음의 골짜기를 서서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