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드하는 여자들
매서운 고추바람이 부는 12월, 장인어른 생신을 맞아 처가로 향했다. 약 2시간 40분의 거리. 이 시간은 아이의 상태에 따라 평화냐 전쟁이냐로 갈린다. 이번 행보는 순탄한 편이었다. 점심에 맞춰 도착한 우리는 장인 장모님, 작은 처제와 함께 스타렉스에 탑승했다. 장모님이 운전대를 잡으시고 추천하신 식당으로 30분을 달리셨다. 위치는 기억하지만 식당 이름을 모르셨던 장모님. 두리번거리던 아내가 외쳤다.
"저기 아니야? 거북이 식당?!"
"어~! 맞다! 주차할게 먼저 내리라."
먼저 내린 우리에게 식당 아주머니의 단호한 한 마디가 떨어졌다.
"오늘 영업 끝났어요."
다시 장모님이 운전대를 잡으셨다. 10분을 더 달려 도착한 생선 요리 집. 각자 취향 따라 주문했다. 야금야금 생선을 잘 받아먹는 아이, 나물과 불고기를 넣어 비벼 드시는 장인어른, 얼큰한 알탕을 한 술 두 술 뜨는 우리, 시간은 걸렸지만 맛은 성공이었다.
식사 후에는 작업이 이어졌다. 처가 농장에서 쓸 버섯 바구니를 받으러 가는 것. 장인어른과 나는 장모님이 말씀하신 곳으로 20분을 달렸다. 배급처에 다다르니 높다란 태양광 시설과 물이 콸콸 쏟아지는 하우스들이 보였다. 때마침 배급처 사모님이 하우스에서 나오셨다.
"주인 양반 곧 나올 거여요."
이어서 나오신 사장님이 가져가야 할 바구니 양을 말씀하셨는데 장모님이 말씀하신 것과는 좀 달랐다. 두 배는 많은 양이었다. 장인어른은 당혹스러운 표정이 역력하셨다.
"한번 더 와야겠는데?"
사장님 말에 고민하시던 장인어른은 한 번에 가져가기로 결심하셨다. 지게차로 떠올린 바구니 한 팔레트가 트럭에 실렸고, 남은 바구니들을 하나 둘 실었다. 다 실은 바구니들은 작은 움직임에도 쓰러질 듯 아슬아슬해 보였다. 장인어른은 육중한 몸으로 트럭 운전석 위로 날래게 오르셨고, 뒤이어 나도 트럭 적재함의 바구니 위로 올라섰다. 망과 밴딩줄을 좌우로 넘기며 바구니들이 절대 벗어나지 못하게 포박하려 했지만 뭔가 어설펐다. 그때 직원 한 분이 나타났다. 굵은 수염과 마른듯하지만 근육질의 탄탄한 몸, 굳은살이 배긴 손. 한눈에 보아도 베테랑 같아 보였다. 가만히 지켜보던 그분은 내 앞에 서더니 능숙한 손놀림으로 망과 밴딩을 조여갔다. 아슬했던 바구니들이 한 몸이 된 듯 견고해졌다.
'이제 안전히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
어느새 캄캄해진 밤길과 수많은 방지턱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생각보다 낮은 창고 입구는 입장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다시 트럭 적재함으로 올라 서 내 키보다 위에 있는 바구니들을 하나 둘 내렸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작업이 마무리되었다. 추위와 예상치 못한 상황에 고생은 됐지만 장인어른과 나는 오히려 더욱 가까워진 걸 느꼈다.
아내가 차려 준 간단한 저녁 식사 후 카페를 가기로 했다. 카페를 마산까지 간다길래 나는 아내에게 물었다.
"얼마나 걸려?"
"25분? 정도"
차를 탄 지 25분이 한참 지났지만 카페가 보이지 않았다. 40여분이 지나자 마창대교 건너편에 반짝이는 카페들이 보였다. 저마다 반짝이는 카페들은 마치 '이리 오라.'라고 손짓하는 듯했다. 그 모습에 매혹된 아내는 "저기 가자!" 외쳤다. 이미 지치신 장모님은 아이와 차에서 잠을 청하셨다. 차 문을 열자 얼음장 같은 바람이 집어삼킬 듯 불어왔다. 우리는 겉옷을 꽁꽁 여미며 카페로 들어갔다. 들어간 곳은 다름 아닌 투썸플레이스... 대화를 나누고 자정이 다 되어서 귀가했다. 쏟아지는 피곤함에 장인어른과 나는 혼잣말 아닌 혼잣말을 했다.
"오늘은 계속 멀리 다니네. 카페를 40분씩이나 걸려 가고..."
"투썸 가려고 40분을 달리다니..."
"마창대교 보러 간 거야~"
아내의 대답에 난 할 말을 잃었다.
이상! 리드당하는 남자들의 평화로운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