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30년만에 느껴본 자취의 맛

이거구나..!

by 리트리버를 좋아해

이해되지 않았었다. 부모님이랑 같은 지역에 직장이나 학교에 다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따로 자취하는 이유를 말이다. 빨래, 청소, 요리 등 집안일을 내 손으로 직접 해야하는 것은 큰 에너지가 소비되는 일이고, 사회초년생 시절에는 지갑이 얇기 때문에, 그러한 집안일에서 소요되는 자잘한 비용들은 부모님과 함께 생활하면서 상쇄돼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절약하고 저금하는 것만이 이 고물가 시대에 미래를 위한 대비라고 생각했다.


나는 자취의 참맛을 태어난 후 30년이 지나서야 발견했다. 자취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 나에게 닥쳤기 때문이다. 올해 하반기 인사발령으로 타지역으로 떠나게 되면서,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42만원의 회사 근처 오피스텔에서 자취를 시작했다. 자취하면서 맛있는 요리도 해먹고, 혼자 조용히 책도 읽고, 늦잠도 실컷 자보는 등 솔직히 자취에 대한 로망이 기존에도 있었다. 다만 위에서 언급한 이유들 때문에 굳이 자의적으로 이 로망을 실현시키지 않았을 뿐이다. 어찌되었든, 나만의 공간이 생긴다는것은 정말로 설레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추가로 내가 갖고 싶었던 각종 가구나 소품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활용하는 것 또한 흥미로웠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자취의 맛중 하나는 세탁기를 돌려놓고, 바닥 청소를 끝내고 나서, 깨끗이 샤워를 마친후, 노란 스탠드만을 켜고, 블루투스 스피커에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잔잔하게 튼 후, 내가 제일 편안하다고 느끼는 의자에 앉아, 내가 읽고 싶었던 책을 읽는 때다.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내가 해야할 일들을 모두 끝낸 후, 오로지 나만의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진정으로 나에게 주는 큰 선물이라고 느낀다. 제일 뿌듯한 순간이다. 부모님과 같이 살면, 내가 원하지 않는 소음들이 있어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보내는 데에 방해가 될 때가 많다. 물론 월세와 관리비를 지출할때는 마음한구석에서 '부모님이랑 같이 살면은 안나가도 되는 돈인데..' 라는 마음이 들기는 하지만, 이건 오로지 나 혼자만의 자유에 대한 비용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자취 생활을 시작한지 겨우 두달 밖에 되지 않았지만, 주위 지인들이 나에게 자취에 대한 소감을 물어보면, 아직까지는 너무 좋다고 말한다. 30년의 묵은 때가 조금씩 벗겨지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그간 주말에 본가에 내려간 적도 몇 번 있었다. 간만에 가족들 얼굴을 보니 심리적으로 안정감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물리적으로는 불편함이 더 생기는 듯 했다. 이전에 부모님과 같이 살때는 그렇게 불편하지 않았는데, 혼자 살다가 다시 부모님이랑 같이 지내려고 하니 더 크게 느껴지는 것 같다. 아무튼 지금부터 결혼하기 전까지는 쭉 혼자 생활을 해야할 것 같다. 자취하면서 소비·청소·요리 등 생활력을 더 높이도록 노력해야 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母 "결혼반지 끼고 있는 남자는 왠지 멋있어 보이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