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2회 간호사 자격시험 감독관 후기
평일에 시험감독관으로 근무를 해보기는 처음이다. 지금껏 내가 참여했던 국가, 지방직 및 소방공무원 시험이나 요양보호사 자격시험 등은 모두 주말에 치루어졌다. 그래서 보통 주말스케줄을 보고 특별히 약속이 없을때에는 종종 지원을 하곤 했다. 물론 주말에 쉬고싶은 경우도 많았지만 돈도 벌 수 있었고 주말을 알차게 보내는 것을 선호하는 나로서는 최고의 선택이었다. 안그래도 박봉인데다가 겸업이 안되는 공직자에게는 월급 외에 돈을 벌 수 있는 몇 안되는 기회(?) 중 하나이기도 하다. 게다가 이번에 간호사 시험감독은 주말이 아니라 평일 근무하는 날에 하는게 아니겠는가? 나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다. 시험감독관 근무를 핑계(?)로 출장처리를 하고 사무실에 바로 출근도 안해도 되었고(물론 감독관근무를 끝나고는 사무실로 복귀를 했다) 거기다가 수당까지 받을 수 있으니 말이다.
내가 그날 감독관으로 참여했던 2022년 제62회 간호사 자격시험은 일반적으로 중고등학교가 아닌 대학교에서 치루어졌다. 만약 중고등학교였다면 건물 구조가 전국 어디에서나 비슷해서 제 시간에 맞춰서 갈 수 있었겠지만 대학교는 건물마다 모양과 출입구가 다르며 주차할 수 있는 공간도 예상할 수 없다. 그래서 그날은 조금 이른시간에 집에서 출발했다.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캠퍼스 내에서도 네비게이션이 너무 잘 찾아주어서 7시반까지였던 집합시간보다 30분이나 일찍 도착했다. 몇 분 뒤 오늘 나와 함께 시험실에 들어갈 다른 감독관님들도 오셨다. 두분 다 소방관분이셨는데 한분은 50대정도로 보이셨고 한분은 나랑 또래인 듯했다. 나이가 많으신 소방관분은 시험감독을 몇 번 해보셨다 하셨지만 또래인분은 처음이라고 하셔서 잘부탁드린다는 말씀을 주셨다. 그 후 시험총책임관님으로부터 교육을 받고 시험문제지와 답안지 등 시험물품을 챙겨서 시험실로 들어 갔다. 보통 일반적인 시험은 감독관이 두명들어가지만 내가 배정받은 시험실에는 수험생이 40명이 넘어 추가로 한명을 더 배치했다고 한다.
시험감독관 요령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시험감독관이 해야할 일들이 시간 분단위로 쪼개져서 요령책자에 자세히 적혀있기 때문에 적혀있는 대로만 하면 된다. 물론 처음에 감독관으로 들어갔을 때는 무척이나 떨렸었는데 사실 진행 과정은 전국 어느 시험이나 비슷하기 때문에 몇 번하다보면 익숙해져 두려움도 사라졌다. 요령책자에 나와있는대로 8시 **분이 되면 수험생들에게 주의사항을 알려주고, 또 몇분지나 **분이 되면 답안지를 교부하고 **분이 되면 문제지를 교부하면 된다. 그저 이렇게 요령책자에서 시키는대로 하면 된다. 생각보다 감독관의 재량은 많이 없다. 나와있는 것보다 더 많은 걸 이야기해서는 안되고 덜 알려주어서도 안된다. 수험생에게 혼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수험생이 궁금해할 만한 것들도 다 나와있기때문에 걱정할 것은 없다. 또한 수험생들 또한 본인에게 중요한 시험이라 관련 정보들을 미리 숙지해오기 때문에 시험 관련 질문을 하는 수험생들도 거의 없다. 하지만 그날 하루의 시험을 위해 수험생들은 피나는 노력을 하였을 것이고 그러한 시간들이 감독관의 잘못으로 인해 헛되어버리면 안된다. 따라서 우리들도 시험 정보는 완벽하게 숙지를 하고 있어야하며 적당한 긴장감 정도는 유지 해야 한다.
시험시작을 알리는 종이 9시 정각에 울리면 수험생들은 극도의 긴장감을 유지한채 문제를 풀기 시작하지만 감독관의 입장에서는 그때부터 어느 정도 한숨을 돌릴 수 있다. 시험 시작전까지는 수험생에게 알려주어야할 것도 많고 질문의 답변도 해주어야하고 주어야 할 물품들도 있기 때문에 감독관들도 다소 바쁘긴하다. 하지만 그 이후 아무 특이사항없이 시험이 시작되고나면은 감독관은 그저 주어진 직책명대로 감독을 잘하면 되기 때문이다. 누구나 알다시피 확률적으로 부정행위를 하려고 마음 먹은 수험생은 거의 없고 실제로 하는 수험생도 거의 없고 실제로 컨닝을 하다가 적발이 안될 확률도 적다. 게다가 내가 참여했던 시험실에는 감독관이 무려 3명이였고 감독하는 위치도 맨앞 정중앙에 한명 그리고 수험생 뒤편 양옆 끝에 두명으로 배치했기 때문에 이 3명의 눈을 피해 부정행위를 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간호사 시험은 총 3교시로 구성되며 각 교시마다 시험시간은 대략 1시간30분정도 이다. 수험생입장에서는 1시간30분이라는 제한된 시간내에 모든 문제를 완벽하게 풀어야 하기 때문에 그 시간이 기필코 길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반면 감독관에게 그 시간은 너무나도 길고 지루하며 내 허리와 다리는 너무나 아프다. 같은 공간이지만 수험생들과 우리의 시간은 다른 속도로 흘러간다. 그렇다고 감독관들이 남는 의자를 꺼내 앉아 휴대폰을 들여다 보거나 졸거나 할 수는 없다. 그래도 우리는 감독관이라는 이름대로 꼿꼿하게 서서 수험생들을 지켜보는 역할을 수행해주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수험생들 스스로에게도 부정 행위를 할 생각조차 못하게 만들며 본인이 아닌 다른 수험생들도 부정행위를 못하겠구나라는 안심을 들게하여 오로지 시험지와의 싸움에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줄 수 있다. 수험생들이 봤을때는 감독관은 그저 논밭의 허수아비나 파수꾼이다.
논밭의 허수아비와는 달리 우리는 움직이거나 생각할 수 있는 허수아비이다. 그렇다고 또 많이 움직이면 수험생들의 집중력을 방해할 수 있고 너무나 깊은 딴 생각에 빠지면 감독을 소홀히 할 수 있다. 그냥 정도껏하면 된다. 계속 서있다보면 허리와 다리가 아파서 자세를 약간씩 바꾸어주어야 하며 간단한 허리, 목돌리기 스트레칭 정도는 해주어야만 한다. 안그러면 시험끝나고 온몸이 쑤실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무생각없이 멍때리듯 수험생들만 가만히 바라만 보고있으면 너무 졸리기도 하고 시간이 너무 안간다.
그래서 이런저런 딴생각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맨 먼저 수험생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옛날 내가 수험생이었던 시절이 생각난다. 나도 저렇게 치열하게 공부를 하고 극도의 긴장감을 가진채로 하루의 시험에 온 에너지를 부었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지금의 직업을 갖기 위해서 얼마나 치열하게 공부를 했던가. 하지만 그렇게 치열하게 공부해서 시험에 통과했는데 내가 공들인 노력과 시간에 비해 적절한 보상이 맞는것일까. 아니면 그정도 노력으로 얻은 직업은 오히려 나에게 과분한 것일까. 내가 했던 공부량은 다른 직업을 위해 쏟아야 하는 양에 비하면 적었던 것일까. 내가 옛날의 수험생시절로 돌아가서 시험에 떨어졌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계속 도전했을까 아니면 다른 길을 택했을까. 뭐 이런 등등 회의적인 생각들도 하기도 한다. 반대로 나도 저들처럼 힘들게 시험을 치워서 지금의 위치까지 왔는데 너무 나태해진게아닐까. 초심으로 돌아가 열심히 해보자. 회사에서 인정받는 직원이 되고자 열심히 노력해야겠다. 뭐 이런 다시 힘을 얻을 수 있게되는 생각들도 한다.
이와 동시에 수험생들을 한번 또 다시 전체적으로 감싸안는듯 바라보았다. 그리고 창문쪽 수험생들을 바라보다가 창밖의 경치를 슬쩍 보게되었다. 여기는 대학교 강의실안이고 밖에는 캠퍼스 풍경이 펼쳐졌다. 아직 1월인지라 봄여름처럼 파릇파릇한 꽃들이 살랑이거나 가을처럼 붉은 단풍들이 하늘을 뒤덮는 광경은 볼 수 없었지만 캠퍼스라는 그 배경자체가 나의 대학시절을 떠오르게 만들었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고 해야 하는게 정답일 수도 있다. 대학교 1년반정도만 다니고 바로 취업을 했고, 졸업을 하기까지 2년반이라는 너무 많은 시간이 남아있기 때문에 대학에 대한 미련을 잠시 버리고 곧바로 일터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잠시 생각해보면 대학교 졸업이후 미래가 투명하든 불투명하든 그 시절에만 할 수있는 것들이 나름대로 정해져있는법인데 굳이 남들보다 빨리 취업을 할 필요가 있었나 싶기도 하다. 다시 대학생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무엇을 열정적으로 해볼것인지, 대학 졸업 이후 전공에 맞는 길을 걸을 것인지 아니면 방향을 틀었을 것인지 등 내 나름대로의 상상을 펼치기도 했다.
이러다가 '아참, 나 지금 감독중이지' 하면서 다시 수험생들을 눈으로 훑어준다. 앞에서 했던 이런저런 생각들은 나 혼자 감독관이였으면 하지 못했고 해서는 안되었다. 하지만 다른 감독관 두분께서도 시험실을 나와 함께 지켜주었기 때문에 나의 생각을 잠시나마 멀리 보낼수있는 일탈들을 할 수 있었다. 물론 다른 소방관 감독관분들 또한 본인을 제외한 두명의 감독관을 믿고 나처럼 잡다한 생각들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분들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잠시 딴 생각에 잠길 수는 있어도 깊게는 잠길 수 없다. 생각의 바다에 얕게 수영을 했다가 곧바로 수면위로 올라와야 했고 다시 긴호흡을 마시고 다시 얕은 수영을 하는 반복을 거쳤다. 내가 잠시 수영을 하는 동안 다른 두분이 수면 위로 올라와 상황을 살피면서 호흡을 마시고, 내가 호흡을 마시는 동안 그분들이 짧은 수영을 할 수 있다. 그렇게 서로를 믿으면서 함께 이 긴 시간을 헤쳐나간다.
각 교시마다 1시간반정도의 시간이 흘러가고 중간에 20분가량 쉬는시간을 거친다. 각 시험이 종료될때면 감독관 서로의 역할을 분담해서 두명은 답안지를 거두고 한명은 그동안 추가적인 마킹을 하는지 감시를 한다. 그 후 답안지 매수를 정확하게 확인하고 소중한 답안지를 품에안고 시험본부로 복귀한다. 중간에 점심식사 시간조차 없다. 중간 쉬는시간동안 본부책임관에게 답안지를 제출하고 다음교시의 답안지와 문제지를 수령한다. 이러한 과정을 3번을 반복한 후 최종적으로 마지막 3교시 시험이 종료되는 시간은 오후2시반이다. 수험생들은 문제와의 힘든 싸움을 했고, 우리들은 시간과의 힘든 싸움을 했다. 싸움의 결과 수험생들은 합격이라는 아름다운 결과를 얻을 수도 있고 불합격의 쓴맛을 경험할 수도 있다. 우리도 결과적으로는 9만5천원이라는 아름다운(?) 수당을 얻었지만 만일 시험시간동안 수험생에게 생각지도 못한 문제나 터졌거나 우리의 감독수행에 있어 차질이 빚어질 경우 그 아름다운 결과물도 가져오지 못했을 수도 있다. 우리 세명의 감독관들은 서로를 잘 의지하고 신뢰했고 맡은 역할들을 잘 수행했다. 수험생들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언급했던 유의사항들을 잘 지켜주었고 쉬는시간이후 다시 **분까지 자리에 앉아달라고 요구하면 너무나 착하게도 잘 들어주었다. 특히 우리 시험실의 수험생들은 탁월한 똑똑이들이었는지 단 한번도 새답안지 교체를 요구한적이 없었고 마킹실수가 발생한 것은 본인들이 가져온 수정테이프로 잘 수정했다. 수험생이 손들고 무엇을 요구한 사항이 하나도 없었다. 어떻게 보면 너무나 고맙기도 했다. 우리 교실의 수험생들 모두의 100%합격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