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이후 아버지의 일상 관찰기
2022년 임인년 '검은 호랑이의 해', '흑범띠' 에 우리 아버지는 드디어(?) 백수가 되셨다. 아버지는 1962년생으로 호랑이띠를 가지셨는데 60년이 흘러 다시 돌아온 호랑이의 해에 퇴직을 하신 것이다. 퇴직 이전 몇 년간 아버지는 지겨운 직장생활을 얼른 마치고 편하게 하고 싶은 거 하면서 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곤 하셨다. 몇 년 전부터 나는 아버지가 퇴임하는 날에는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에 대한 상상을 펼치곤 했었다. 예를 들면 아버지 회사에 가서 우리 엄마와 번듯한 직장을 가진 형과 내가 꽃다발과 함께 '정말 고생 많으셨다고, 앞으로 남은 날 동안 하고 싶으신 거 다하고 지내세요'라는 말들을 전달해드리면서 다 같이 사진을 찍고 근사한 저녁을 함께하는 그런 누구나 상상하는 일반적인 그림을 그렸다. 그런데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이런 일반적인 그림은 나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코로나19로 인해 퇴임식에는 가족을 포함한 외부인은 참석을 할 수 없고 회사 내에서 직원들끼리만 조촐하게 행사가 진행된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혹시나 몰라 회사에 전화를 걸어 가족들만이라도 참석을 할 수 없냐고 물어봤지만 양해바란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하는 수없이 우리 가족은 크리스마스에 연말파티 겸 아버지 퇴임기념으로 다 같이 외식을 하고 집에서 케이크와 와인을 즐길 수밖에 없었다. 그 후 12월 말에 아버지는 예정대로 회사에서 퇴임식을 하시고 같이 퇴직하는 직장동료들끼리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집으로 마지막 귀가를 하셨다. 형은 서울로 다시 돌아간 상태여서 엄마와 나만이 집에서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고 아버지는 8시 조금 넘어서 선물꾸러미와 꽃다발을 품에 안은채 문을 열고 들어 오셨다. 엄마와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축하한다고 고생하셨다고 하면서 아버지를 반겼는데, 들고 오신 꽃다발은 매우 화사하고 아름다웠지만 아버지의 표정은 시들어 있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아버지가 출근을 안 하신 지 2주가량 지난 현재 나는 집에 계신 아버지를 보면서 많은 이유를 알아내고자 했다. 가장 큰 이유는 단순히 퇴직을 한 그 자체라는 상실감이라는 것이다. 아버지의 친형이자 나에게는 큰아버지가 계신다. 큰아버지는 약 5~6년 전에 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퇴직하여 집에 머물고 계신데, 몇 년 전 큰아버지가 약간의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얘기를 아버지에게 들었다. 매일매일 출근할 곳이 있다가 하루아침에 백수가 되어버린 처지로 자기 자신의 가치 상실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도 이러한 비슷한 감정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직장생활을 하시는 동안 주말마다 고향에 있는 할아버지께서 물려주신 밭에 가서 감나무를 키우곤 하셨다. 나와 형은 어릴 적부터 종종 따라가서 아버지가 일구어내고 있는 감나무밭이 자라고 그 옆에 창고와 오두막이 지어지는 과정을 보고 자라왔다. 아버지는 항상 퇴직하면 시골에 가서 대봉감나무를 키우면서 홍시와 곶감을 만들어서 지인들에게 나누어주고 작은 규모지만 판매도 하면서 지낼 거라고 하셨다. 지금 그 시기가 도래했다. 주말농장을 이제 평일에도 즐길 수 있는 때가 왔다. 아버지는 이제 진짜 행복할 날만 남은 듯했다. 그런데 항상 인생이라는 앞길에 수많은 변수가 존재한다. 아버지께서는 옛날 일하시던 40대 50대가 아닌 이제 60대를 시작하면서 체력이 예전 같지가 않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옛날에는 느끼지 못했는데 요즘은 어깨가 자주 아프시다고 하셨고, 종종 나에게 같이 촌에 가서 일 좀 도와달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어릴 때야 나도 호기심으로 종종 따라가고는 했지만, 시골에서 태어나 자라왔던 아버지와 달리 도시에서 자란 나는 농촌 일손 돕는 것을 힘들기만 하고 재미없는 일로 치부해버렸다. 나도 평일에 일을 하고 주말에는 조금 쉬면서 취미생활도 하고 친구들도 만나 놀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기 때문에 농촌일은 순전히 아버지 자신만의 몫이었다. 그리고 또 요즘 같은 겨울에는 농촌일이 딱히 할 게 없어서 자주 시골로 내려가시진 않는다.
그래서 요즘 아버지는 보통 그냥 집에 계신다. 아버지는 백수가 되셨다. 고정적으로 매달 들어오던 수입은 사라지고 국민연금도 몇 년 후에 나오지 곧바로 나오는 것도 아니다. 우리 집은 부유하지 않아서 아버지는 여러 가지 취미생활을 할 만큼 여유돈을 가지고 있지 않다. 돈이라도 조금 많았다면 퇴직하고나서 골프를 치시던가 무엇을 새롭게 배우겠지만 그러지도 못했고, 체력이라도 예전 같았으면 멀리 여행을 자주 다니시던가 농사일을 더욱 크게 하거나 했을 것인데 그러지도 못했다. 단호하게 말하면 아버지는 그냥 돈도 없고 체력도 예전 같지 않아서 그냥 집에서 TV나 보고 집 주위에 산책을 가시거나 낮은 산에 올라갔다 내려오시는 게 전부인듯하다. 그래도 최근에 아버지는 최신형 노트북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기회가 와서 내가 넷플릭스나 유튜브 시청하는 방법을 알려드렸다. 아버지는 방안에 누우셔서 넷플릭스 영화 2시간짜리를 전부 다 보시지 못하고 중간에 잠들어 버리시곤 한다. 내가 퇴근하고 아버지 안방에 들어가서 인사드리면 종종 하시던 말씀이 "내는 왜 이리 넷플릭스 영화만 보면 잠이 잘 올꼬? 완전 수면제다 수면제. 잠이 잘 오네"였다. 영화관이 아닌 집에서 노트북으로 2시간 영화를 집중력 있게 보는 것도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아버지는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을 같이 따라가고 의미있는 수많은 장면이나 대사를 놓치지 않는 등 복잡한 생각을 하면서 영화를 2시간 동안 보기 싫으신 거다. 아니, 보기 싫은 게 아니라 못 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아버지를 보면 참 씁쓸하다. 집에 계신 아버지를 볼 때마다 나는 조금 나가서 뭐라도 배우시라고, 아니면 책이라도 조금 읽으시라고, 아니면 친구들이라도 만나시라고 말한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습관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책 읽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으면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 평소에 못 읽었던 책을 꾸준히 읽을 수 있었을 것이고, 새로운 것에 대한 열린 마음을 가지고 지내왔다면 이렇게 퇴직을 하고 시간이 많을 때 돈이 많이 안 들면서 재미있는 취미들을 찾아서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아버지를 보면서 '나는 절대로 퇴직하고 저렇게 살지 않을 거야', '나는 다양한 것들을 배우면서 자기 계발을 위한 취미들을 평생 안고 살 거야'라는 생각 한다.
아버지를 보며 이런 감정을 느끼는 나 자신 스스로가 한심하고 부끄럽다. 아버지도 하기 싫어서 안 한 게 아니라 집안의 가장으로서 두 아들을 키우면서 여유가 없어서 못한 게 아닐까. 베이비부머 세대이신 우리 아버지는 7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우리나라의 눈부신 경제성장과 IMF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오셨을 것이다. 지금 MZ세대인 나와 형이 살고 있는 시절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아버지가 회사 생활하던 시절에는 지금처럼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거리도 없었고 있다 하더라도 지금처럼 주말 이틀을 다 쉬면서 주 52시간 근무를 하는 정도의 여유는 없었을 것이다. 그동안 다양한 경험들을 안 한 게 아니라 할만한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고 돈을 안 모은 게 아니라 자식들을 키우느라 못 모은 것이었다. 그렇다. 아버지의 퇴직 후의 삶은 여유가 있으면서도 여유가 없는 것이다. 시간적인 여유는 많지만 그 여유를 채울만한 준비물이 없다. 아버지의 퇴직 후 2주 동안을 지켜보면서 나 자신을 스스로 뒤돌아 보기도 했고 아버지의 과거를 흐릿하게나마 들여다 보기도 했다. 아버지도 지금 생각이 많을 것이다. 앞으로 많은 시간이 주어졌는데 어떻게 하루하루를 의미 있고 재미있는 것들로 채울 것인지를 고민하실 것이다. 그동안 근 40년간 직장생활을 아무 탈 없이 끈기 있게 마무리하신 것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느끼면서 아버지의 앞으로의 남은 인생에 대한 건승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