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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트리버를 좋아해 Mar 27. 2022

오히려 좋아

무한긍정

  사람들은 자신의 성격을 정확하게는 파악하기 힘들지만 대략적인 성향 정도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성향마저도 스스로 혹은 타인에 의해서 파악되는 경우가 많다. 어릴때는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사람인가'에 대해서 의문을 품는 행위조차 드물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본격적인 사회활동을 시작하면서 그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사유하면서 혹은 타인과의 관계에 귀를 기울이면서 자연스럽게 얻게 된다.

  나도 어릴적에는 내가 어떠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 잘 알지 못했고 관심도 없었다. 지금 이순간에도 내가 어떤사람인지 논리적으로 설명을 할 수 없다. 다만 그 설명을 하기위한 자료를 스스로 조금씩 수집하고 있는 중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 자료들은 보통 혼자 사색을 하는 과정이나 타인과의 사회적 관계 등을 통하여 수집되곤 한다. 내가 지금까지 그러한 자료들를 모은 결과 몇가지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먼저 나라는 사람은 매사에 긍정적인 자세로 남들과 소통하기를 좋아하는 외향적인 인물이라는 점이다. 두번째로는 인관관계에  다소 예민하고 상황에 대한 눈치가 빠르며 타인에 대해서 상처받는 것을 싫어한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는 나에게는 두번째와 같은 성격때문에 스스로 상처를 받고 손해를 감수해야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대략적으로 파악된 나라는 사람에 대한 정의이고, 앞으로도 자료를 꾸준히 수집할 예정이다.

 



  몇 달 전 아주 재미난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종종 들여다 보는 인터넷 커뮤니티의 어떤 게시글에 대한 '오히려 좋아'라는 댓글이다. 정확하게 기억이 안 나지만 그 게시글의 내용은 아마 글쓴이가 겪고 있는 난처한 상황에 대한 고민상담류의 글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당사자에게는 심각할 수도 있는 글에 그저 다섯글자로 답변하는 반응이 성의없고 익살스럽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오히려 난문쾌답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그 댓글을 본 이후로 '오히려 좋아'라는 다섯글자에 매료되었다. 찾아보니 '오히려 좋아'는 아프리카TV의 'BJ만만'이라는 사람이 인터넷 방송에서 자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점점 퍼져나가 일종의 '밈'이 된 케이스다. '오히려 좋아'라는 밈(meme)은 이제 내 맘(마음)에 쏙 들었다. 그 이유로는 평소 내가 가지고 있는 긍정적인 마인드와 비슷하다는 점, 그리고 남을 배려한답시고 스스로 손해를 감수해야하는 상황이 야기시키는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겠다는 확신, 이 두가지를 들 수 있다. 나에게 닥친 예기치 않은 불리한 상황이나 예상은 했지만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부정적인 감정을 단숨에 날려버릴 수 있는 이 다섯글자를 종종 외치거나 마음속으로 되뇌이곤 한다.

  그러한 경험을 예를들면, 올해 1월, 새로운 근무지로 전보를 기대했던 나는 인사발령 사항을 알리는 엑셀 파일에 내 이름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보통 현 부서에서 1년 정도 근무하면 그 부서에 대해 질려버리기 시작하는 나에게 1년 넘게 있어야 한다는 그 통지는 나를 좌절시키게 했다. 전보 기준일의 1주일 전 쯤부터 주변지인들이나 가족들에게 '다음주쯤이면 나 다른지역으로 갈거 같아'라고 말하며 김칫국을 마시고 다녔던 나로써는 다시 씁쓸한 해명을 해야 할 판이었다. 여기서 나는 '오히려 좋아'를 외쳤다. 우선 다른 지역으로의 발령이 나에게 줄 수 있는 여러 부정적인 요소들을 생각했다. 우선 다른 지역으로 가면 자취방을 계약해야 하고, 그 부서의 새로운 업무를 익혀야하며, 처음 보는 동료 및 상사분들과 새로운 유대감을 형성해야 한다. 이러한 요인들이 발생시키는 스트레스와 비용은 무시할 수 없는 정도다. 그 후 반대로 현 근무지에 남게되는 상황이 가져다 주는 긍정적인 요소들을 생각했다.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생필품 등에 지출되는 비용을 줄이고, 집안일의 부담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능숙한 기존의 업무를 그저 성실히 수행하면 되고 현 부서에서 사귀었던 동료들 및 고향 친구들과 더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예로는 최근 주말에 친구들과 갔던 캠핑 이야기다. 동계 캠핑을 위한 장비가 없던 나는 3월 중순이 되자마자 친구들과 약속을 잡고 캠핑장을 예약했다. 주말 날씨를 슬쩍 체크해보니 강수 표시는 없고 쨍쨍한 태양 표시만 그려져있어 성공적인 캠핑을 기대하기에 충분했다. 부푼 기대를 안고 캠핑장에 도착하여 장비를 풀기 위해 차에서 내린순간 '어 이게아닌데..?'라는 생각과 함께 부풀어진 나의 기대가 한 순간에 홀쭉해져 버렸다. 체크한대로 해는 쨍쨍했지만 바람이 너무 많이 불고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좌절할 수 없다. 나만의 기적의 합리화 수단인 '오히려 좋아'를 친구들에게 외치며 우려를 덜어주고자 했다. 바람이 많이 불어 타프의 양쪽 옆을 거의 지면과 붙을 정도로 가까이 설치했다. 그리고 바람이 통과하는 앞과 뒷 부분에 각각 2명씩 등지고 앉아 최대한 얼굴에 바람을 대면하지 않도록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의 바람은 우리를 공격했지만 이게 진정한 캠핑이라며, 어느 정도의 고생, 고통이 동반해야 추억이 깊다며 이러한 상황이 오히려 좋을 수 있다고 분위기를 전환하고자 했다. 그러한 상황에서 바꿀 수 없는 자연을 비난하기보다, 바꿀 수 있는 우리의 마음 역전시켜 그 순간만큼은 우리만의 시간을 온전히 즐기기로 한 것이다. 실제로 친구들과 맛있는 음식과 술을 먹고 마시며 수다를 떨고 있으니 들어오는 바람을 전혀 신경쓰지 않게 되었다.




  위의 경험들뿐만아니라 평소 직장생활에서 부딪치는 상사와 동료들간의 갈등, 가정에서의 부모님이 하시는 흔한 잔소리, 친구 및 지인들간 소통에서 발생하는 오해, 나의 다양한 취미생활에서 겪는 어려움이나 고민 등 수많은 부정적인 상황들에서 단지 '오히려 좋아'라는 다섯글자를 외치며 극복하려는 나 자신이 너무 재밌다. 이러한 재밌는 밈이 나만의 긍정적인 행동 양식이 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내가 손해를 감수해야만 하는 상황을 회피하고자 하는 바람이 나의 마음속에 늘 존재했기때문이지 않을까. 하지만 이것보다 중요한 것은 애초에 내가 피해를 봐야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나만의 기준을 정하고,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 기준선이 옳고 그름을 분명히 구분해 내도록 노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선을 단단히 고정하더라도 불가피하게 그 선을 뛰어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으니 내 마음의 최종 안전선에는 '오히려 좋아'라는 문구를 항상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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