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맛의 시대, 쓴맛의 시대입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한국의 시간입니다

by Robin 임봉규



요즘 한국 커피를 상징하는 단어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입니다. 투명한 컵에 가득한 얼음은 도시인의 일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불과 수십 년 전, 한국을 휩쓴 커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커피믹스의 시대였습니다.


커피믹스는 산업화 시대가 낳은 가장 효율적인 음료였습니다. 1970년대 동서식품이 선보인 ‘3in1’ 커피믹스는 당시로서는 매우 혁신적인 구조였습니다. 뜨거운 물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표준화된 맛을 낼 수 있었기에 사무실부터 공장, 군부대까지 빠르게 확산되었습니다.


커피는 더 이상 다방이라는 특정 공간의 전유물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쉼 없이 돌아가던 산업화 현장에서 커피믹스는 가장 간편하게 누릴 수 있는 휴식의 방식이었습니다.


왜 그렇게 달콤해야만 했을까요. 그 배경에는 원두의 특성과 시대적 상황이 맞물려 있었습니다.


주원료였던 베트남산 로부스타는 카페인이 높고 쓴맛이 강해 대량 생산에는 적합했지만, 그대로 마시기에는 부담스러운 면이 있었습니다. 이 강한 쓴맛을 중화하기 위해 투입된 설탕과 프리마의 조합은 오히려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고된 노동 후 당분을 필요로 하던 시대적 환경까지 더해지면서 믹스커피의 단맛은 단순한 취향을 넘어 고단한 시간을 버티게 해주는 에너지가 되었습니다.


이제 커피는 세대의 기억을 가르는 기준이 되었습니다. 중노년 세대에게 커피믹스는 치열했던 야근과 동료와의 짧은 담소, 고단한 하루 끝의 위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반면 카페 문화 속에서 커피를 배운 젊은 세대는 원두 본연의 산미와 향을 즐기며 설탕 없는 쓴맛에 익숙합니다.


산업화 시대의 단맛과 글로벌 카페 시대의 쓴맛은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온 세대의 경험을 반영합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무실 서랍 한쪽에는 믹스커피 몇 봉지가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단지 맛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 노란 봉지 안에는 젊은 날의 열정과 동료들의 얼굴, 그리고 우리가 함께 건너온 치열한 시간의 흔적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무엇을 마시는가는 결국 우리가 어떤 시대를 통과하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커피 한 잔은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