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는 시민들, 침묵 위에 걸린 문장들

by Robin 임봉규

도시는 말하지 않지만 많은 것을 드러냅니다. 거리의 표정과 벽의 색채, 그리고 그 위에 걸린 문구들은 그 도시의 수준을 보여주는 거울입니다. 오늘날 우리 도시의 거리를 보며 불편함을 느끼는 시민은 적지 않습니다. 다만 그 불편함이 좀처럼 발화되지 못한 채 내면에 부채처럼 쌓여가고 있을 뿐입니다.


요즘 거리에서 가장 흔하게 마주치는 풍경은 단연 현수막입니다. 문제는 그 문구의 표현 수위가 점점 거칠고 조악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자극적인 문장은 비등하듯 늘어나지만, 이에 대한 시민의 반응은 대개 침묵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이 침묵은 동의가 아니라 무력한 체념에 가깝습니다.


본래 현수막은 지역 행사나 공공 캠페인 등을 알리기 위한 실용적인 정보 수단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현수막은 정보를 전달하는 ‘창’이 아니라, 타인의 시야를 가로막고 자신의 주장만을 내뱉는 ‘벽’으로 변질되었습니다. 특히 정치·사회적 현안이 담긴 현수막은 설득보다는 낙인을, 토론보다는 배제를 선택하며 공공공간을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난립의 배경에는 제도적 허점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현수막은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이며, 특히 정당 현수막의 경우 옥외광고물법의 예외 조항을 방패 삼아 행정의 통제를 사실상 벗어나 있습니다. 내용의 적절성이나 맥락을 판단할 권한이 행정에 없다 보니, 결국 ‘많이 거는 쪽’이 공공공간을 독점하는 승자독식의 구조가 형성됩니다.


그 결과 현수막은 지정된 거치대를 넘어 가로등과 난간, 횡단보도 주변까지 무차별적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이는 정보 제공이라기보다 의도된 ‘시각적 습격’에 가깝습니다. 관리 주체인 지자체나 정당이 동시에 게시 주체가 되는 구조 속에서, 시민의 문제 제기는 “절차상 문제없다”는 행정적 수사에 가로막힙니다. 법적으로는 합법일지 모르나, 시민이 체감하는 공간적 권리는 무참히 침해되고 있습니다.


최근 특정 정치인의 죽음을 추모한다는 명목의 현수막이 도심을 뒤덮은 사례는 공공공간의 사유화가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애도하는 마음 자체는 존중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추모는 본래 개인의 선택적 영역입니다. 공공공간을 통해 특정 감정을 반복적으로 노출하고 사실상 동참을 강요하는 방식은 또 다른 폭력입니다. 더욱이 추모의 시간이 지나고 맥락이 변했음에도 방치된 현수막들은 애도의 메시지마저 소음으로 전락시킵니다.


여기서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합니다. 모든 시민이 실시간으로 정보에 접근하는 디지털 강국 대한민국에서 과연 현수막이 여전히 유효한 소통 수단인지에 대한 질문입니다. 공지와 주장, 반론과 토론은 이미 온라인 광장에서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현수막이라는 방식은 마치 조선시대의 ‘방’처럼 일방적으로 걸어두고 지나가는 이들에게 강제로 읽히게 만듭니다. 반박도, 토론도 허용하지 않는 이 일방적 외침 속에서 다수 시민의 감정은 묻혀버립니다.


해외 주요 도시들이 현수막을 엄격히 제한하고 포스터나 온라인 매체, 합법적 집회 등으로 표현의 통로를 분산시키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도시의 정돈된 풍경을 유지하고 공공언어의 절제를 지키기 위함입니다. 현수막을 무조건 ‘표현의 자유’로 포장하는 것은 공공공간의 본질을 오해한 결과입니다. 공공장소는 모두의 공간이지, 목소리 큰 집단의 게시판이 아닙니다.


진정한 자유는 말할 권리뿐만 아니라 원치 않는 주장을 강요당하지 않을 권리까지 포함할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도시의 품격은 건물의 높이가 아니라 거리의 언어에서 결정됩니다. 신고만 하면 된다는 이유로 말하지 않는 시민들 위에 끊임없이 문장을 걸어 두는 행태를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제 도시는 침묵하는 시민들의 소리 없는 경고에 응답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