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고향이 되어가는 시간

by Robin 임봉규


명절이 다가오면 마음이 먼저 길을 나서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기차표를 구하려 애를 쓰고, 정체된 고속도로 위에서 도착 시간을 계산하는 일조차 명절의 일부였습니다.

짐은 가벼웠지만 목적지는 선명했습니다.

그곳에는 부모님이 계신 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집에는 늘 변하지 않는 공기가 있었습니다.

현관문을 열면 느껴지던 온기와 부엌에서 번지던 전 냄새가 명절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명절은 달력의 날짜가 아니라 감각으로 기억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내려갈 고향이 사라지는 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부모님이 떠나신 뒤에는 명절이 와도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해졌습니다.

“언제 내려오느냐”는 다정한 말은 멈췄고 귀향이라는 단어는 과거형이 되었습니다.

이동하던 사람이 아니라 머무는 사람이 되었음을 깨닫는 순간, 명절의 화려함 뒤로 조용한 공백이 생겼습니다.


그 적막 속에서 새로운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언제 내려가요?”라고 묻던 시간은 지나가고

이제는 손주들이 “할아버지 집에 언제 가요?”라고 묻습니다.

그 질문을 듣는 순간 알게 됩니다.

고향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이동했음을.

부모님이 계시던 집에서 내가 사는 집으로 삶의 중심이 옮겨왔을 뿐임을.


나는 더 이상 길을 떠나는 사람이 아니라 길의 끝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과거의 명절에 나는 부모님의 식탁에 앉아 음식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지금의 나는 식탁을 차리는 자리에 서 있습니다.

전 냄새를 기억하던 사람이 그 냄새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역할의 전환이야말로 세월이 남기는 가장 분명한 흔적입니다.


한때는 고향으로 향하는 길 위에서 명절을 느꼈습니다.

이제는 현관 초인종이 울리는 순간 명절을 느낍니다.

이동의 방향이 바뀌었을 뿐 기다림과 만남의 구조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사라진 것은 장소가 아니라 나를 맞아주던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새로 생긴 것은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입니다.


명절은 그렇게 부모의 시간에서 나의 시간으로 넘어왔습니다.

생각해보면 명절은 늘 한 세대 위를 중심으로 회전해 왔습니다.


우리는 그 궤도를 따라 움직이던 존재였지만 이제는 스스로 중심이 되어 다음 세대를 끌어당기고 있습니다.


조용하지만 분명한 삶의 궤도 이동입니다.

고향이 사라졌다는 말은 절반만 맞습니다.

부모님이 계시던 물리적 공간은 사라졌지만 가족이 모이는 마음의 거점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그곳이 바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입니다.

명절의 본질은 방문이 아니라 계승입니다.

정성을 받아오던 시간을 지나 이제는 정성을 건네주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명절이 오면 어디로 갈지를 고민하기보다 누가 올지를 기다리게 됩니다.


나는 더 이상 고향을 찾는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이제 누군가의 고향이 되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