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마 미아”에서 시작된 짧은 여행

by Robin 임봉규


이탈리아의 어느 시장 골목입니다. 접시 하나가 바닥에 떨어집니다.

깨지는 소리보다 먼저 튀어나오는 말은 “Mamma mia(맘마 미아)”입니다.

놀람인지, 안타까움인지, 아니면 단순한 반사인지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그 한마디가 상황을 수습합니다. 큰일은 아니라는 신호이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도 된다는 암묵적 합의입니다.


이 말의 직역은 “나의 어머니”입니다.

그러나 이 순간 누구도 실제 어머니를 호출하지 않습니다.

감정이 이성보다 앞서는 찰나, 무의식이 선택한 가장 안전한 피난처가 튀어나온 것뿐입니다.

과연 이탈리아 사람만 이토록 뜨겁게 어머니를 부르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고개를 듭니다.

국경을 하나 넘으면 답은 곧바로 나타납니다. 표현만 다를 뿐, 같은 장면이 반복됩니다.


먼저 이탈리아의 Mamma mia는 놀람과 탄식, 감동과 체념을 한 번에 담아냅니다.

억양에 따라 의미가 바뀌고, 손짓이 더해지면 감정의 방향이 분명해집니다.


바다를 건너 스페인에 도착하면 거의 같은 말이 들립니다.

¡Madre mía(마드레 미아)입니다.

구조도, 정서도 닮아 있습니다.

어머니는 여기서도 감정의 기준점입니다.

톨릭 문화권의 깊은 기억이 언어의 화석으로 남아 있는 셈입니다.


조금 더 북쪽으로 올라가 프랑스에 서면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같은 상황에서 프랑스 사람은 Oh là là(올 라 라)라고 말합니다.

이는 단순한 놀람을 넘어 상황을 관조하는 리듬감을 담고 있습니다.

감정에 매몰되기보다 그 순간을 하나의 장면으로 바라보려는 태도,

즉 감정은 표현하되 여유는 잃지 않겠다는 정서가 소리에 담겨 있습니다.


기차를 타고 독일로 가면 말은 더 짧고 명확해집니다.

자주 쓰이는 표현은 Ach(아흐)와 Mein Gott(마인 곧)입니다.

Ach는 우리말의 “아…”에 가깝습니다.

실망이나 이해의 순간까지 폭넓게 쓰이며, 감정을 길게 끌지 않고

즉시 받아들이겠다는 태도를 담고 있습니다.

Mein Gott은 직역하면 “나의 신이여”이지만,

실제로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마침표를 찍는 말에 가깝습니다.

감정을 빠르게 정리하려는 성향이 드러납니다.


해협을 건너 영국에 도착하면 한 겹 더 완충된 표현이 등장합니다.

Oh dear 혹은 Goodness입니다.

Goodness는 놀람 자체를 줄이기보다는,

놀람을 사회적으로 안전한 형태로 바꾸는 말입니다.

감정은 인정하되, 그것이 소란이 되지 않도록 예의로 감싸는

영국식 언어 습관이 응축되어 있습니다.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가면 분위기는 다시 직선적으로 변합니다.

Oh my God은 놀람과 충격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표현입니다.

여기에 대응해 널리 쓰이는 Oh my gosh는 같은 감정을 유지하되,

표현만 순화한 말입니다.

감정의 크기는 그대로 두고, 언어의 날만 둥글게 만든 미국식 타협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시선을 동아시아로 돌립니다.

가장 먼저 중국을 만납니다.

중국에서는 접시가 떨어지는 순간 哎呀(Aiya, 아이야)라는 소리가 거의 반사적으로 튀어나옵니다.

이 말은 특정 대상을 부르지 않습니다.

어머니도, 신도 호출하지 않습니다.

그저 감정을 소리로 바로 배출하고, 상황을 빠르게 넘기려는 표현입니다.

놀람이 되기도 하고, 귀찮음이 되기도 하며, 실수를 인정하는 소리가 되기도 합니다.

의미보다 기능이 앞서는, 현실적이고 즉각적인 감정 처리 방식이 언어에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이어 일본으로 가면 분위기는 또 달라집니다.

일본에서는 접시가 떨어져도 감정이 밖으로 넘치지 않습니다.

대신 あら(아라), まあ(마아), えっ(엣) 같은 짧은 소리가 낮은 톤으로 흐릅니다.

이는 감정을 내면으로 수렴시키며, 주변의 평온을 깨지 않으려는 배려의 언어입니다.

소리보다 맥락이, 개인보다 ‘장’의 분위기가 우선합니다.


마지막으로 대한민국입니다.

같은 상황에서 우리는 “어머”, “아이구”, “세상에” 같은 다양한 선택지를 꺼냅니다.

이는 말이 많은 것이 아니라,

상황과 관계에 따라 감정의 온도를 세밀하게 조절하는 능력입니다.

내 감정을 표현하면서 동시에 상대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정’의 문법이 감탄사 하나에도 녹아 있습니다.


이 짧은 여행의 끝에서 보이는 것은 분명합니다.

각국의 감탄사는 단순한 말버릇이 아니라,

한 사회가 감정을 어디까지 허용하고 어떻게 다루는지를 보여주는 언어의 요약본입니다.

남유럽은 어머니를 부르고,

영미권은 신을 호출하거나 순화하며,

중국은 소리로 처리하고, 일본과 한국은 조화를 먼저 살핍니다.


소리는 달라도 목적은 같습니다.

감정을 잠시 밖으로 내보내고 다시 일상의 평온으로 돌아가기 위함입니다.


결국 “Mamma mia”는 이탈리아만의 과장이 아닙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닌 보편적인 반사 신경입니다.

세계는 저마다 다른 언어로 놀라고 탄식하지만, 그

짧은 한마디는 언제나 같은 일을 합니다.

요동치던 마음을 정리하고,

우리를 다시 안녕한 일상으로 돌려보내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