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래희망

by 호영

어릴 적 나의 장래 희망은 경찰이었다.

TV나 영화 속에서 나오는 경찰의 모습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시민을 지켜주고 범죄자에게 법의 심판을 받게 하는 모습이 세상을 이롭게 하는, 참 멋있고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헌병으로 군생활을 했다. 헌병이 하는 일은 군대라는 특수한 울타리가 있긴 하지만 경찰이 하는 일과 비슷한 부분이 많다. 헌병 안에도 여러 병과가 있는데 내가 지원한 병과는 생활기록부를 제출해야 했다. 초, 중, 고 생활기록부를 출력하고 보니 대부분 장래 희망이 경찰로 적혀있었다. 한두 해 정도는 경호원이었던 걸로 기억이 된다. 내가 군대를 간 게 20대 초반이었는데 초중고 생활기록부 장래 희망이 거의 경찰이었으니까 그때의 나는 인생의 거의 전부를 경찰이 되고 싶어 했던 것 같다.


헌병으로 간접 체험한 경찰의 업무는 나에게 경찰의 꿈을 더 갈망하게 만들었다. 군대 전역을 코앞에 두고 경찰병원을 찾아가 안과에서 검사를 받았다. 나는 결격 사유가 있다는 걸 어릴 적부터 어렴풋하게 알고 있었는데 지원해 봐야 합격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경찰병원에서 의사에게 확인받았다. 상실감이 클 법했지만 이미 알고 있었고 확인받고 싶어 간 거라 그런지 의외로 덤덤했다. 그리고 전역 후 졸업을 하기까지 1년 동안 많은 고민을 했다.


나는 딱히 특출 난 능력이 있거나 성적이 좋거나 하지 않았다. 경찰은 아니지만 세상에 도움이 되고 뭔가 의미 있는 일이 하고 싶었던 것 같았다. 다양한 직업을 넘나들며 20대를 보낸 것 같다. 마케팅, 골판지 제조, 완구 제조, 제약회사까지 이렇게 뜬금없는 이력이 있나 싶다.


그렇게 직장 생활을 하며 경제적인 여유나 풍요로운 삶만을 동경하게 되었고, 장래희망은 어느새 잊히게 되었다. 스스로 '내 꿈이 뭐였지?'라고 생각하면 '원래는 경찰이 되고 싶었어요.' 라며 경찰병원에서 확인받기 전으로 돌아가는 것 말고는 대답할 수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사실 장래 희망이라는 게 꼭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른이 되면서 장래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미래라는 건 가깝거나 먼 걸 가리지 않고 어릴 때 보다 구체적으로 불확실하다. 또한 희망이라는 단어 또한 삶에 깎여나가 무뎌질 수밖에 없다. 거창한 인생의 목표보다 평화로운 삶을 동경하는 게 장래희망이라면 장래희망이다. 나는 그랬고, 많은 사람들이 경중에 차이가 있지만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와중에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장래희망에 대해 생각하는 일이 있었던걸 보면 아주 조금은 재미있는 삶이라는 것에 의미를 두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물론 그런 생각을 한다고 일상이 바뀔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게 평범하게 살아가다 많이 아프게 되었고, 아프게 된 이후로 병원과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그럼 앞으로 무엇이 될 수 있고, 무엇이 되고 싶은가.


우선 생존하고 싶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오랜 시간 함께하고 싶다. 평소에는 생각하거나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을 통해 성장하고 싶고 하면 할수록 재미있는 일이 하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한 나의 장래 희망은 '멋있는 할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이 부족한 걸 가지고 있는 사람에 대해 부러움을 느끼기도 하고 시기나 질투를 느끼기도 하는데, 이렇게 되고 보니 나는 시간을 많이 보내고, 시간을 많이 가진 사람이 정말 부럽게 느껴진다.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이겠지만 할아버지가 된다는 게 당연한 일이 아니며 나에게는 확률적으로 어려운 일인 게 사실이다. 게다가 멋있는 이라는 단어가 붙은 할아버지가 되는 건 쉽지 않은 미션이다.


나는 종로를 좋아한다. 북적이는 도시를 좋아해서 여행을 가도 도시의 골목과 빌딩 숲을 거닐면서 여기 사람들은 무얼 하고 먹고사나, 여기도 다들 바쁘게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모습을 관찰하기를 좋아한다. 종로는 시간이 많이 쌓여 있다. 그래서 굳이 비교하자면 강남보다 종로를 좋아해서 자주 찾았던 것 같다. 게다가 종로에는 어르신이 많다. 사실 어르신만 많은 건 아니고 사람이 많다. 서울의 대부분의 지역이 사람이 많지만 종로처럼 10대부터 80대까지 모두가 골고루 즐길 거리가 있는 곳이 있는지 싶다.


그렇게 마주치는 어르신들 보며 이전까지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아프고 나서는 그분들이 너무 부럽다. 물론 개개인의 사연이나 상황을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분들에게는 각자 많은 시간이 쌓여있다는 것이다.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쓰셨는지까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그분들이 보낸 시간을, 이야기를, 경험을 가지고 싶어서 그렇게 부러운 것 같다.


누구나 얼마나 시간이 주어졌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산다는 건 오묘한 감정이다. 아프고 나면서 속상한 일도 많지만 재미있는 일도 많이 생긴다. 램프의 요정 지니가 소원을 3가지 들어준다고 하면 한참을 고민하다 첫 번째 소원을 '소원의 개수를 무한대로 만들어주는 게 소원이에요'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처럼 아픈 덕분에 나에게는 '멋있는 할아버지'라는 흥미로운 장래 희망이 생겼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할 용기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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