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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 그리다 Oct 15. 2021

아플 땐, 말해도 돼.
힘들 땐, 울어도 돼. 서럽게.

나와 나의 아주 특별한 이혼 가족 이야기 (5)

3. 서로에게 의지가 되는 사람들. 가족...    


 시간이 지나면서 각자의 방식대로 현실에 적응하며 조금씩 상처가 치유되기 시작했다. 

 첫 5년간은 나는 동생과 엄마와 살며 한 달에 한두 번 아빠를 만나러 가고 아빠와 하루의 시간을 보내는 정도가 되었다. 그때는 아직 엄마, 아빠는 함께 보는 일이 없었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르자 집에만 있던 것 같던 아빠도 조금씩 바깥활동을 시작했고 금요일이면 친구들과 늦게까지 만나고 돌아와 토하는 소리만 들리던 안방 화장실의 엄마의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2007년 3월. 엄마 아빠의 이혼 이후 부모님을 한자리에서 본건 외할아버지 장례식장이 처음이었다.


 엄마가 연락하지 않을게 분명해 아빠에게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알렸다. 

 단지 말해야 할 것 같아서 전화를 했던 것 같다. 외할아버지의 죽음은 내가 태어나서 처음 맞이하는 또 다른 두려움이었다.


 장례식장이 차려지고 저녁이 되지 않은 이른 시간에 아빠가 장례식장에 들어서자 외삼촌들과 외숙모 표정이 안 좋은 것처럼 보였다. 엄마는 차가운 말투로 "어떻게 왔어요?"라고 했다. 


 아빠는 "20년 넘게 아버지로 여기며 살았는데 오는 게 당연한 것 같아서 왔어. 인사만 드리고 갈 거야."라고 하고 말했다.

 왠지 아빠도 함께 있어야 할 자리에서 밀어낸 것 같기도 하고 안 와도 되었을 텐데 불편한 시선을 느끼며 떠나는 아빠 뒷모습에 쓸쓸하고 복잡한 이상한 마음이었다.


 그때 아빠는 어떤 생각으로 왔던 걸까 묻지 못했다. 아직도...


 그 후로 몇 년의 시간을 거치며 외할머니와 친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다른 가족들 앞에서 3살 아기가 된 듯 우는 엄마를 처음 봤다. 이렇게 우는 엄마가 내 엄마구나 엄마가 그동안 많이 참고 많이 미안했구나...

 엄마에게 엄마를 잃은 슬픔은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슬픔이라는 게 느껴졌다. 

 엄마는 친할머니 장례식에 오진 못했지만 며칠을 울고 힘들어했다. 또 결혼했을 때부터 할머니와의 일들을 조금씩 이야기해주기 시작했다.

 시어머니였지만 어린 나에겐 또 한 분의 엄마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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