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이 되고 나서, 나는 다시 병원에 취직했고, 토기는 아직 육지에 남은 시간을 살고 있었다.
그 짧은 두 달 동안, 우리는 참 열심히 만났다.
뚝섬, 강남, 용산, 부평, 부천, 송도...
하지만 가장 많이 만난 장소는 대방역이었다.
내가 일하던 병원이 그 근처였기 때문이다.
퇴근할 즈음이면 토기는 늘 병원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루의 피로가 깃든 걸음으로 나서면, 저만치서 손을 흔들던 토기.
그 모습 하나로, 내 일상이 조금은 덜 고단하게 느껴졌었다.
시간은 이상할 정도로 빨랐다.
손잡고 걷는 거리도, 가만히 앉아 마시던 커피 한 잔도 그날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다르게 보인다.
시한부 연애.
그리고 결국, 우리가 처음 만났던 노량진역에서 마지막 데이트를 했다.
처음의 설렘과 마지막의 체념이 묘하게 뒤섞이는 장소.
운명처럼, 그렇게 한 바퀴 돌아 제자리로 온 느낌이었다.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특별할 것 없는 하루였지만 모든 대화가 조심스럽고, 모든 시간이 어쩐지 아까웠다.
"배 타면... 6개월 이상 못 볼 수도 있어."
예전부터 여러 번 듣던 말이었지만
이날만큼은 다르게 들렸다.
좀 더 확실하고, 냉정하게.
이제 정말이구나, 싶었다.
여섯 달.
그건 그냥 숫자가 아니라
내가 그에게 닿을 수 없는 거리였다.
"힘들면 얘기해. 헤어져도 괜찮아."
그 말을 듣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나 잘 기다릴 수 있어."
그런데 정말, 기다릴 수 있을까?
나는 아직 단 한 번도, 이런 식의 사랑을 한 적이 없었다.
그만큼의 공백을 감당해 본 적도, 감정의 휘청임을 붙잡아 본 적도 없었다.
"토기도 배 안에서 나 기다리잖아. 나는 친구들도 있고, 놀러도 나갈 수 있잖아."
그렇게는 말했지만, 그건 나 스스로를 달래려는 위안이었을지 모른다.
나는 그가 없는 세상을 미리 상상해봤고,
그게 아무리 바빠도, 누구와 있어도
결국 쓸쓸할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시간이 됐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은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그가 스크린 도어를 통과해 열차에 타려는 찰나, 나는 의도적으로 눈을 피했다.
눈이 마주치면 무너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결국, 열차 문이 닫히는 마지막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조금 흘렀다.
'울지 마.'
열차가 출발한 뒤, 토기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잠깐, 그 몇 초도 안 되는 시간에.
그런데 나는 그 짧은 문장이
이 사람을 말해준다고 생각했다.
토기는 '썅남자'가 아니었다.
친구들 사이에서나 그랬을 뿐.
실제로는 누구보다 주변을 잘 살피고,
눈물의 타이밍조차 먼저 알아채는 사람이었다.
이별을 준비만 한 사람과, 정말로 경험한 사람은 다르다.
나는 늘 '보내야 한다'고 생각은 했었지만,
진짜 내 감정이 작별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며칠을 눈물 섞인 기분으로 보냈다.
그리고 승선 날, 그에게 전화가 왔다.
"승선이 밀렸어."
"어? 왜?"
"배 스케줄은 늘 그래."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그 말에,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뭔가 더 감정적인 장면으로 기억될 줄 알았던 이별이 이렇게 허무하게 뒤집히자, 오히려 헛웃음이 나왔다.
그 후로도 그는 한 달 가까이 떠나지 않았고,
나는 또 덤처럼 얻은 시간을 조심스레 껴안았다.
그리고 정말 마지막이라고 했던 날.
또 노량진. 또 지하철역.
같은 대사, 같은 작별.
"이번엔 진짜 가?"
"나도 몰라."
"또 이렇게 돌아오는 거 아냐?"
그는 웃었고, 나도 울음은 나지 않았다.
이번엔 제대로, 덤덤하게 말이 나왔다.
“그럼, 잘 다녀와.”
말투는 평범했는데,
그 말이 왠지 영원처럼 느껴졌다.
그게 D-300일의 시작이었다는 걸,
그때의 나는 아직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