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토기는 배에 승선했다.
그를 다시 만나는 데까지 그날부터 무려 10개월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코로나가 전 세계를 강타하며, 선원 교대가 거의 불가능해진 탓이었다.
배는 한 사람도 제대로 내려보낼 수 없었고, 토기는 그 안에 갇혀 있었다.
나는 그 사실을 들었을 때, 가슴 한편이 저릿했다.
“괜찮겠지, 건강하겠지.”
수없이 되뇌었지만, 걱정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해 내내, 나는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했다.
방호복과 마스크에 갇혀 숨 쉬는 것조차 버거웠던 날들이었다.
수많은 환자와 씨름하며 매일 지쳐갔다.
그런데도 그 힘든 시간 속에서, 나는 오히려 그 고된 일상 덕분에 토기와 떨어져 있는 긴 시간을 견딜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 ‘버티기’ 자체가 내게 가장 큰 위안이었을지도 모른다.
누구도 자유롭게 만나고, 손을 잡고,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것이 이토록 소중한 줄 몰랐다.
내가 느끼는 이 답답함과 그리움이
토기에게도 똑같이 닿을까?
아니, 더 깊고 무겁게 닿았을까?
그는 기계 수리를 하는 일을 한다고 했다.
덥고 시끄럽다고만 했지만, 그 말속에 담긴 피곤함과 지침은 내가 상상하는 것 이상일 거다.
그런 토기가
내게 얼마나 힘들다고 말하고 싶었을까.
또 얼마나 말을 삼켰을까.
나는 종종 미주알고주알 병원에서 겪는 일들을 토기에게 쏟아냈다.
말 안 듣는 환자 이야기, 일을 개판 치는 동료 문제, 심지어 병원장에 대한 불만까지.
그렇게 내 마음의 짐을 조금씩 덜어냈다.
하지만 토기는 나에게 그토록 많은 이야기를 했을까?
내가 그에게 걱정 끼칠까 봐,
혹은 나를 더 힘들게 만들까 봐,
혼자서 속앓이를 했을 거라는 생각이 나를 아프게 한다.
“나는 괜찮아.”
그 말 뒤에 숨겨진 외로움과 두려움은
나와 마찬가지로 크고 무거웠을 텐데.
서로에 대한 사랑이 깊었던 만큼,
서로의 상처를 보이지 않으려는 마음도 컸다.
그게 우리였다.
'내가 너였다면, 어떻게 버텼을까.'
이 질문이 내 안에서 계속 맴돈다.
얼마나 외롭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긴 시간 혼자서 버티며
가끔은 무너지고 싶었을 텐데.
나는, 나 자신에게도 묻는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견딜 수 있었을까.
답은 알 수 없지만,
그 고된 기다림 속에서도 토기는 꿋꿋이 버텼으리라 믿는다.
우리가 나누던 짧은 카톡, 끊기지만 가끔 들려오는 목소리.
그 작은 연결 고리가 얼마나 큰 힘이 되었을지 모른다.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며, 마음을 붙들고 있었던 시간이었다.
하지만 때로는 그마저도 부족했다.
말하지 못한 것들이 너무 많았다.
그 긴 10개월은
코로나라는 전례 없는 재난 속에서
우리가 마주한 외로움과 두려움, 그리고 사랑의 시험이었다.
토기가 배 위에서 보내는 시간 동안,
나는 매일 그가 무사하길 바랐다.
그리고 가끔은, 그가 내 마음속에 와서 속삭여주기도 바랐다.
"괜찮아, 나도 힘들지만 널 생각하며 버티고 있어."
꼭 말이 들리지 않아도,
나는 믿는다.
우리의 사랑이,
그 보이지 않는 시간과 공간을
묵묵히 이어주고 있다는 것을.
내가 너였다면, 나는 이렇게 버텼을까?
아니, 너라서.
네가 함께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던 시간.
그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