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이런 남편이?

by 송대근

술을 안 마시는 토기.


이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그는 나에게 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그 말은 토기의 말버릇이었다. 자주 반복되지만, 결코 무심하게 던지는 말이 아니었다.

내가 내리는 크고 작은 결정들을 토기는 늘 존중했고, 거기엔 참음도 양보도 없었다.


"난 네가 자유롭게 사는 모습이 좋더라. 그게 너잖아."


그 한마디가 진심이었다.


그리고 정말 놀라운 건, 이런 태도가 단지 나와의 사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거였다.

대부분의 예비신부가 넘겨야 할 시월드의 벽도, 우리에겐 없었다.


"각자 집안 문제는 각자 해결하자."


그의 원칙은 분명했고, 나와 예비시댁이 부딪히는 일을 철저히 막아줬다.

예비시아버지와의 극단적인 갈등 상황에도, 그는 내 앞에서 딱 잘라 말했다.


"그건 네 문제가 아니라, 우리 아버지와 나의 문제야."


말뿐이 아니었다. 그는 행동했다.

내 편에 서는 게 아니라, 그냥 내 쪽이었다.




반면 친정 쪽 일엔 시댁과 다르게 섬세했다.

배를 타고 있는 중에도 지나가는 이야기로 친정집에 세탁기가 고장 났다는 얘길 하자, 이것저것 원인 추정을 하더니 급기야 최신형 세탁기를 인맥을 통해 최저가에 구해줬다.


생신, 기념일, 행사 등도 빠짐없이 챙기며 "네가 얼마 냈어?" 물어보고, 그에 맞춰 똑같이 지원했다.


며느리로서의 삶은 해방되었고, 딸로서의 삶은 존중받았다.

물론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건, 시아버지와의 특수한 상황 덕도 있었지만.


중요한 건, 토기가 흔하디 흔한 '한국형 효자'와는 다르다는 점이다.

그는 단절을 선택했고, 나를 보호했다.


집안일도 곧잘 했다. 배라는 환경은 홀로 살아남아야 하는 환경이라고 한다. 그래서 어지간한 요리는 할 줄 알고, 매일매일 신선한 재료를 장 봐와 퇴근한 나에게 요리로 대접하곤 했다.


물론 단점도 있다.


위생관념이 좀 떨어져서, 속옷을 안 갈아입으려 한다거나, 샤워를 안 하려 하거나, 청소기를 안 돌리거나 하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청소기는 내가 돌리면 되고, 팬티도 잔소리하면 갈아입기는 한다. 한눈팔면 또 안 갈아입긴 하지만.

정말 알 수 없는 심리다.


아무튼간에 그런 남자와 산다면, 많은 부분에서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믿었다.


'세상에 이런 남편이?'


... 그래도 단 하나의 문제.


그는 1년에 3개월만 집에 있었다.

나머지 8~9개월은 바다 위에서 보냈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볼 때마다 서로에게 애틋했고, 만나는 날엔 모든 걸 쏟았다.

그런 우리에게 위기는 없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그건, 내가 세상을 너무 만만하게 본 탓이었다.

내가 철부지였던 거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때가 딱 정점이었다.



행복의 정점.

착각의 정점.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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