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가슴속에 남은 분노가 가라앉지 않는다. 이런 마음 상태로 글을 쓴다는 게 좋은 글로 태어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기분이 정리되길 바라며 시작해 본다.
토기와 결혼하며 나는 그가 술을 끊겠다고, 한두 잔만 마시겠다고 약속한 걸 믿었다.
그런데 그 약속은 깨졌다.
이번 마카오 여행에서도 맥주를 무지막지하게 마셔댔고, 내가 싫다는 눈치를 줘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래도 '한두 잔'의 약속은 있었으니 참았다. 그 정도까지 봐줬는데, 집으로 돌아와서도 그만큼 또 술을 마셨다니.
퇴근하고 오후 3시쯤 집에 들어섰을 때, 토기는 잠에 취해 있었다.
낮부터 술을 마신 건 아닌가 싶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의심은 했어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술에 취한 토기는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내가 가져온 스테이플러를 치우라며, 치우지 않으면 나를 찍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어 내가 들고 온 장바구니를 머리에 씌워 숨 막히게 하려 했다.
짜증이 치솓고 확증으로 바뀌면서 술 마셨냐고 따져 묻자, 그는 갑자기 방으로 도망가 벌러덩 누워 잠을 자 버렸다.
그날은 특히 친정 부모님이 시골에서 갓 딴 호박을 들고 오기로 한 날이었다.
혼자서 가지러 나온 내가 보이자 아버지는 “송서방은 어디 갔냐?”라고 물었다.
나는 퉁명스럽게 “집에서 잔다”라고 대답했다.
부모님은 의아해하셨지만, 나는 그 순간 친정으로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토기가 술을 마셨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 이상 내 대답은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억지로 집에 돌아왔다.
방에서 디비누워 자는 토기 모습은 꼴도 보기 싫었고, 나는 거실에서 스마트폰만 들여다봤다. 머릿속으로는 아무 내용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화를 삭일 곳이 필요했다. 그런 하루가 지나갔다.
다음 날 아침, 토기는 어색한 표정으로 내 눈치를 보며 청소도 하고 말을 걸려 애썼다. 술 마신 걸 고백할지 몰라 기다려 줬지만, 결국 내가 먼저 주제를 꺼냈다.
"어제 술 마셨어?"
목소리가 떨떠름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마음속은 시멘트 바른 듯 무겁고 답답했다.
"맞아, 술 마셨어."
토기는 불편한 몸짓으로 내 옆에 앉아 말을 시작했다.
"술 안 마시기로 약속했잖아. 그 약속은 기억 안 나?"
"기억은 나, 그런데 술 마시면 억제가 잘 안 돼."
토기는 또 술 마시고 또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내가 들을 때마다 늘어놓는 변명에 분노가 폭발했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앞으로 안 마실게."
또 똑같은 대답이었다.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앞으로 안 마신다고? 그게 몇 번째야?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부산에서도, 항상 그랬잖아. 그리고 또 술 마시고. 참 편하다. 안 마시겠다는 말만 하면 끝이고. 네가 술 마셔서 내가 겪은 피해는 어떻게 보상할 건데?"
토기는 우물쭈물하며 미안하단 말만 반복했다.
더는 못 살겠다는 생각에 나는 냉큼 말했다.
"그럼 각서 써."
토기의 술주정은 더 이상 내 삶에 있어 용납할 수 없는 폭력이 되었다. 말로는 술을 끊겠다고 했지만, 행동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그날의 사건은 나에게 단순한 실망을 넘어선 배신이었고, 사랑과 신뢰의 균열이었다.
나는 여전히 그를 사랑한다. 하지만 사랑이 모든 걸 감싸줄 수 없다는 현실도 똑똑히 깨닫고 있다.
토기가 정말 변할 수 있을지, 그가 내 삶의 일부로 남을 수 있을지. 아니면 서로 다른 존재로써 각자의 길을 가야 할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