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가 위기로
벌써 휴가라고요?
이 해, 저는 LNG KOLT 호와 AL QA'IYYAH 호를 나눠 승선했습니다.
1~4월은 LNG KOLT 호에 승선하고
5~6월까지 휴가를 보낸 뒤,
7~10월까지는 AL QA'IYYAH 호에 승선하고
11~12월은 휴가를 보내게 되었죠.
8개월 승선, 4개월 휴가의 교대주기가 최근 4개월 승선, 2개월 휴가로 교대 트렌드가 바뀌면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승선기간이 짧아진 만큼 집에서 보내는 연속된 휴가의 기간도 짧아졌습니다. 총기간을 두고 보면 큰 차이가 없기는 한데, 뭐가 더 좋은지는 모르겠습니다.ㅎㅎ
왜냐하면, 선원들은 선박에 올라갈 때마다 선박에 대해 새로 공부해야 하는 부담이 크기 때문입니다. 특히 선박기관사들은 선박마다 설치된 기계들의 타입이 다르고 상태도 다르기 때문에 늘 승선 후 새로운 것에 적응해야 하는 부담이 큽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한번 승선한 뒤 8개월가량 길게 승선하는 것을 선호하기도 합니다. 다소 오래 승선하더라도 어차피 총 승선량은 비슷하니, 익숙한 배를 길게 타겠다는 마음이지요.
또 어떤 분은 무조건 4개월씩 짧게 승선하는 것을 선호하기도 합니다. 장기승선의 정신적으로 피로도가 심하니 숨 돌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특히 요즘 젊은 선원들은 이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고 합니다.
이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만들어진 변화라 생각되고, 또 자신에게 맞는 선택을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둘 다 장단점이 있어서 어떤 특정한 방식을 선호하지는 않습니다.
사실 이런 부분에서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아마 승선을 오래 이어가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하긴 합니다. 아주 긴, 10년의 호흡으로 본다면 사실 큰 차이도 아닙니다.
선원휴가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몇 달가량 긴 시간을 쉴 수 있기 때문에 여행일정을 잡기 수월하다는 점이지요! 저는 이 해에 아내와 함께 홍콩/마카오로 일주일간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홍콩의 거리는 워낙에 유명하지만, 제가 정말 인상 깊게 남았던 음식은 바로 '레몬치킨' 이었습니다!
굳이 홍콩까지 가서 치킨?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요, 글쎄요.
바삭한 치킨과 새콤달콤한 맛이 저는 상당히 좋더라고요.
한국에는 이런 음식을 안 파나? 하는 심정이 들 정도로요.
저희 부부는 여행을 정말 좋아하지만 맞벌이 부부다 보니, 막상 제가 길게 쉬더라도 아내와 휴가를 맞추는 것은 1년에 한 번 정도 밖엔 어려웠습니다. 그렇기에 제가 휴가가 많아지더라도, 아내와의 여행은 바뀐 것이 없더라고요.
그럼 남는 시간에는 뭘 해야 할까요?
휴가 때 실컷 노느냐 하면, 사실 그렇지도 않습니다.
승선을 위한 교육들도 몇 주간 필연적으로 잡히며, 개인적인 커리어 준비도 해야 합니다.
저는 틈틈이 진급을 위한 준비도 가져갔습니다.
항상 상위직책을 준비해 두어야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LNG KOLT 호의 이야기는 이전에 이미 했으니, 이번에는 AL QA'IYYAH 호의 이야기를 중심적으로 풀어보겠습니다.
이 배는 대서양 노선을 운항했습니다.
미국에서 LNG를 싣고 유럽으로 나르는 것이지요.
주로 벨기에, 이탈리아, 브라질 등을 다녀갔습니다.
이 항로는 겨울만 아니라면 꽤 쾌적한 항로입니다. 비록 북대서양의 겨울날씨는 험하긴 하지만 그래도 2주 정도만 항해하면 되니까요.
배의 이름이 AL QA'IYYAH로 읽기가 좀 어려운데, 카타르에서 발주한 선박이라 그렇습니다.
(사실 지금도 정확한 발음이 뭔지 모릅니다ㅎㅎ)
이 배는 카타르에서 LNG 프로젝트로 정책적으로 뽑아내던 배라서, 신조선인 데다가 급여조건도 꽤 좋았습니다.
게다가 제가 근무 중인 회사에서는 이때 발주한 선박만 8척을 가지고 있어서 한동안은 같은 시리즈의 신조선에 탈 수 있었습니다! 선박기관사로서는 상당히 괜찮은 조건입니다.
이 배에서의 생활은 몹시 만족스러웠습니다.
까다로운 수검도 끝내면서 승선했고, 선원들 간의 관계도 원활했거든요.
개인적으로는 선장님께 골프를 배울 수 있어서 몹시 좋았습니다. 선원들은 승선 중 24시간을 붙어지내다보니, 싫은 사람과 함께라면 정말 지옥이겠지만 합이 잘 맞으면 그렇게 즐거울 수 없습니다.
완벽했던 생활... 모든 것이 만족스럽던 그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엉뚱하게도, 바로 이 8척의 신조선에 탑재된 엔진들이 환경규제 문제로 전부 단종된 것입니다.
처음엔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최신 설비에, 급여도 괜찮았지만 엔진이 단종된다?
곰곰이 따져보니 이건 생각보다 꽤 치명적인 문제였습니다.
기관사는 기계를 다루는 직업입니다.
어떤 엔진을 다뤘는지가 곧 이력이고, 커리어입니다.
그런데 제 커리어가 앞으로 더 이상 생산되지 않을 기계에 올려지게 되었습니다.
타야 할 배들은 전부 같은 엔진이 달려있습니다.
적어도 폐선까지 15년은 유지될 겁니다.
그러면 저는 35살에 이 엔진으로 시작해서,
50살이 되었을 때 ‘단종된 엔진만 다뤄본 기관사’가 됩니다.
그다음은요?
그다음의 커리어는 아무도 장담해주지 않습니다.
여기서 안주해도 충분히 편하고 괜찮기에, 한 번 더 점프를 시도하기에는 추락의 리스크가 있었습니다.
선택지는 두 개였습니다.
지금 회사에 남아 은퇴까지 근로한다.
위험을 감수하고, 한 번 더 도약을 시도한다.
이런 선택의 순간은 제 인생에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만약
22살에 곧장 전역했다면,
24살에 재수하지 않았다면,
30살에 자동차선에 남았다면.
33살에 벌크선을 고집했더라면.
지금의 제 인생은 지금과 꽤 달랐겠죠.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신합니다.
지금보다 만족스럽지는 않았을 거라는 것.
그래서 이번에도 새로운 커리어를 찾아 도약을 골랐습니다.
제가 50대였다면 남아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연말에 사직서를 제출하게 됩니다.
자... 저는 더 나은 곳을 찾을 수 있을까요?
이 해에 주식시장은 꽤 요란했습니다.
상반기에는 미국의 관세 정책 이야기로 시장이 흔들렸고,
하반기에는 AI 붐이 오면서 특정 종목들에 불이 붙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주가는 위아래로 크게 출렁였습니다.
제가 들고 있던 주식들 역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오를 땐 잘 오르고, 빠질 땐 제법 빠졌죠.
다만 한 가지 기준은 분명했습니다.
AI든 뭐든 결국 본업을 잘하는 회사여야 한다는 것.
이 기준은 5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저는 흔들림 없이 항상 하던 대로 했습니다.
시장 상황과는 크게 상관없이, 정해둔 금액을 꾸준히 분할매수했습니다.
또 일정금액은 채권, 예적금 등 현금성 자산으로 1억원 넘게 확보하고요.
결과적으로 이 해에 연 9% 정도의 투자수익을 올렸습니다.
수익률만 보면 평범한 편이지만,
투자 금액이 꽤 커진 덕분에 약 3800만 원 자산증가가 생겼습니다.
시작은 일 년에 한 달 월급 더 벌어보겠다고 시작한 투자인데,
어느새 직장인 연봉 하나쯤 벌어다 주는 수준이 되어버렸네요.
그렇게 제 자산은?
35살 순자산 6억 5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