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운동 가야지!”
퉁퉁 부은 종아리 근육이 충분히 풀리기도 전에 운동을 준비하는 아내를 보며, 오늘 하루도 그녀가 감당했을 무게를 조용히 인계받을 준비를 했습니다. 간호사들의 (*)인계가 환자의 생명을 넘기는 일이라면, 저의 인계는 아내의 감정과 표정을 읽어내는 일입니다.
“그렇게 하면 스트레스가 풀려?”
“그럼. 근데 병원 사람들은 더해. 난 양반이지.”
아내는 벌떡 일어나다가 잠시 어지러움을 말했습니다. 잠시 벽을 붙잡고 정신을 가다듬는 눈. 그 눈동자 속에는 제가 가보지 못한, 하얀 벽으로 둘러싸인 그들의 세상이 용광로처럼 일렁이고 있었습니다.
아내의 어깨너머로 옅은 땀 냄새가 났습니다. 저는 그 냄새에서 묘한 열기를 느꼈습니다. 배의 가장 덥고 답답한 곳에서 돌리던 소각기. 바로 그 태우는 열기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망망대해 위에서 배가 토해내는 온갖 오물을 불길 속으로 밀어 넣을 때, 소각기 앞의 공기는 지독하게 끈적거렸습니다. 타버린 것들은 재가 되어 사라지지만, 불을 지피는 사람에게는 매캐한 그을음과 열기가 문신처럼 남습니다.
눈앞의 아내는 그때와 같은 냄새를 풍기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지금, 자신을 연료 삼아 무언가를 태우고 돌아온 것이 분명합니다.
오늘도 병원 선생님들은 환자의 바이탈 체크에는 예민하게 반응하면서도, 정작 본인들의 삶이 (*)어레스트로 치닫는 것에는 무감각했다.
“쌤, 이거 먹어봐요. 이번에 새로 나온 도넛인데 진짜 미친 맛이야.”
“그러다 진짜 몸 상해요. 적당히 드셔야지.”
도넛을 건넨 보호사 선생님의 유니폼 단추는 금방이라도 튕겨 나갈 듯 팽팽했다. 입사 당시 M 사이즈를 입던 그녀는 이제 XXL조차 버겁다고 했다.
“알지, 아는데... 퇴근하고 집에 가면 나를 반겨주는 건 배달 앱밖에 없어. 입에 뭘 넣지 않으면 오늘 하루가 보상받지 못하는 기분이라니까?”
야식은 식사가 아니라 영혼을 태우고 남은 재를 억지로 덮는 시멘트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 시멘트가 굳어갈수록 그녀의 몸은 점점 더 무거운 감옥이 되어간다.
“나 이거 12개월 할부로 질렀어. 안 그러면 미칠 것 같아서.”
“헐? 쌤 부자예요?”
차지쌤은 연봉을 상회하는 카드내역이 연말정산에 찍혔단다. 사람들에게 커피를 쏘는 기부천사라 불리지만, 병원에서 깎여 나간 자아를 돈으로 급하게 수선하려는 처절한 바느질로 보인다.
“병원에서는 맨날 죄송합니다만 달고 사는데... 밖에서 돈 쓰는 맛이라도 있어야지, 안 그래?”
13년 차 간호사의 스마트폰 화면 속 가방의 가격은 우리의 몇 달 치 월급과 맞먹었다. 그녀의 눈 밑에는 거뭇한 잿빛이 드리워져 있지만, 가방을 말할 때의 목소리만큼은 기이할 정도로 들떠 있었다.
하지만 가장 서글픈 건 헤드 간호사 선생님이었다.
“생활비 생각하면 이 짓을 못 그만둬. 애 학원비나 벌려고 (*)나이트킵 하는 나도 좀 돌았나 보다.”
“학원비가 얼마 길래요?”
헤드 간호사쌤은 월급의 절반을 학원가로 송금하며 ‘사랑한다’ 고 말한다.
하지만 나이트 근무를 마치고 돌아가면, 그녀의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없다. 아이와 저녁을 먹어 본 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는 그녀.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정작 사랑할 시간마저 태우고 있었다.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을 녹이고 있었다.
퇴근길에 5만 원어치 야식을 입 안으로 털어 넣거나, 몇 달치 월급을 전부 쏟아부어 가방을 사고, 밤잠을 줄여가며 자식의 성적표에 기도한다. 다 타고 남은 잿더미 위에 화려한 장식품들을 쌓아 올린다.
“쌤은 스트레스 어떻게 풀어요? 명품도 안 사고, 야식도 안 먹고.”
다른 쌤들의 질문을 나는 웃어넘겼다. 내 스트레스 해소법은 온몸이 땀으로 젖을 때까지 몸을 혹사시키는 것뿐이라고 말하기엔, 이곳의 공기가 너무나도 끈적거렸기 때문이다.
운동을 마치고 돌아온 아내는 곧장 거실 한복판에 요가 매트를 깔았습니다. 아내의 하루는 아직 끝나지 않았나 봅니다.
“오늘 너무 힘들었잖아. 그냥 좀 쉬지 그래?”
걱정 어린 말에도 아내는 유튜브의 홈트레이닝 영상을 틀었습니다. 복근운동을 하는 아내의 몸이 파르르 떨렸습니다.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숨소리가 거칠어질수록, 아내의 표정은 오히려 기묘하게 맑아졌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위한 운동일까요?
병원에서 강제로 마주하는 불행, 동료들의 공허한 과시, 그리고 죽음이 짙게 뭍은 병원의 냄새를 땀을 통해 뽑아내려는 정화 의식에 가까워 보입니다.
배에서 소각기를 돌릴 땐, 쓰레기를 다 태우고 나면 불을 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내가 처한 삶의 소각로는 멈추는 법이 없습니다. 탈진할 때까지 자신을 몰아붙이는 아내의 뒷모습을 보며 저는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졌습니다.
그 그을음을 씻어내지 않으면, 아내는 정말 한 줌의 재로 변해버릴 것만 같았습니다.
어쩌면 오늘도 아내는 환자들에게 수십 번 소리쳤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 거실 바닥에 쓰러지듯 누워 거친 숨을 몰아쉬는 아내에게 그 외침을 되돌려줄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저 한 명뿐입니다.
저는 수건을 들고 다가가 아내의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주었습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들릴 듯 말 듯 한 아주 작은 목소리로 아내에게 외쳤습니다.
“환자분! 그러면 안 된다고요!”
(*)인계 : 전번 근무자와 후번 근무자의 교대 시 진행하는 업무전달.
(*)어레스트 : 심정지.
(*)나이트킵 : 야간고정 근무. 수당을 받지만 밤샘근무를 하기 때문에 건강에 무리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