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시작이네.”
현관에 놓인 아내의 등산화가 유독 무거워 보이는 저녁입니다. 우리는 말없이 뉴스를 틀어놓고 이불속에 몸을 깊숙이 파묻었습니다.
TV 화면 하단에는 '의대 정원 확대'라는 자막이 몇 분째 흐르고 있었죠. 리모컨을 만지작거리며 채널을 돌릴까 말까 고민합니다.
화면 속에서는 지역 의사제니, 필수 의료 붕괴니 하는 거창한 단어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지방에는 정말 필요하지 않아? 당신 병원만 봐도 부족해 보이던데.”
“필요하지. 절실해. 오죽하면 한의사를 끌어다 쓰겠어? 그런데 저기 봐, 또 반대 성명이잖아.”
내 질문에 아내가 힘없이 웃었습니다.
화면 속 의사협회 대표는 성명서를 국어책 읽듯 '총력 대응'을 외우고 있었습니다. 의료 붕괴를 막겠다는 그들의 바람이 어쩐지 누군가에게는 공허한 메아리처럼 들릴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파업하면 결국 환자들만 손핸데. 당신도 고생길이 훤하고.”
“......”
아내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화면에 비친 구급차의 붉은 사이렌 불빛을 멍하니 바라보았습니다. 몇 해 전, 도로 위를 헤매던 '응급실 수용 거부' 뉴스들이 겹쳐 지나갔습니다.
“근데 의사 숫자만 늘린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야. 우리나라에 간호대학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 근데 간호사는 항상 부족해. 교육낭비, 인생낭비.”
우리 사회에 낭비된 사회적 비용을 생각해 봅니다. 문제는 항상 쉽게 해결하려 했고, 그 해법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매년 선원을 양성해도, 사라지지 않는 만성적인 선원부족과도 몹시 겹쳐 보였습니다.
기억 속, 그날의 병동은 기묘할 정도로 고요했다.
하지만 그 고요함은 시한폭탄의 초침소리를 더 잘 들리게 도와주는 조미료 같은 맛이었다.
“쌤, 이 약 그대로 유지할까요?”
선배에게 차트를 넘겼다. 주치의의 서명란은 하얗게 비어 있었다. 바이탈은 안정적이었지만, 누군가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전문간호사'들이 의사들의 빈자리를 메우며 진료의 영역을 뛰어들고 있었다.
미국 같은 곳에서는 전문간호사가 독립적으로 진료하고 그에 걸맞은 사회적 대우를 받는다지만, 이곳은 아니다. 불법진료라며 책임만 무겁게 지우면서, 그 행위에 이름을 붙여주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처방하자. 죽게 내버려둘 순 없잖아.”
씁쓸하게 말하던 선배의 얼굴이 떠오른다. 4년간의 대학공부와 혹독한 실습, 수술실이나 중환자실의 긴박한 밤들을 견뎌내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전문성'이라는 단어는 빛 좋은 개살구였고, 법의 보호가 없는 책임은 언제든 자신들을 집어삼킬 준비가 되어 있었다.
법도, 보상도 없다. 그런데도 그들은 병원 내에서 '전문간호사'라고 불린다. 수식어에 걸맞은 일들은 온몸으로 받아내야 하지만 그들은 분명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간호법 얘기가 또 나오네.”
“의협회장보다는 연기를 잘하는 것 같은데.”
정치인의 힘주어 말하는 목소리가 거실을 울렸습니다. 간호사의 처우를 개선하겠다는 약속들. 하지만 저는 고개를 갸웃하며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정말 법이 생겨도 나아지는 건 없을걸.”
“왜 그렇게 생각해?”
저는 잠시 생각을 정리했습니다. 1년의 절반 이상을 육지와 격리된 채 떠돌아야 하는 바다 위에서의 시간들. 그 비릿한 고립을 견디게 하는 건 법이 아니라 체념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 선원들에게도 '선원법'이라는 게 있어. 얼핏 들으면 우리를 보호해 줄 보호막 같지만, 실상은 우리를 가두는 울타리에 가까워. 노동법이 아니라 선원법을 적용받는 순간, 우리는 '특수한 노동자'가 되거든. 11개월 29일 동안 배에 가둬놔도 불법이 아니고, 모호하게 정의된 비상상황이라는 명목 아래 무한한 오버타임이 당연해지지. 심지어 노동법에선 금지하려는 포괄임금제라는 족쇄까지 채워져 있어.”
저는 씁쓸하게 덧붙였습니다.
“망망대해에서 사고가 나면 모든 책임은 선장에게 쏠리고, 배를 부리는 회사는 법망 뒤로 쏙 빠져나가 버려. 법이 우리를 지켜주는 게 아니라, 우리가 법의 사각지대를 지키고 있는 셈이지.”
“파업은?”
“바다 위에서는 금지야. 선원의 안전을 위해서라나. 근데 배가 항상 바다에 있지, 땅에 붙어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되겠어? 결국 그 핑계로 파업의 'ㅍ'자도 못 꺼내게 해 놓은 거야.”
아내의 표정이 굳어지는 게 느껴졌습니다.
“그럼 그 법은 누구 편이야?”
“배를 멈추지 않게 하는 편이지. 배에 탄 선원이 아니라.”
나는 화면 속 정치인의 매끄러운 입술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TV 속에서는 갈등을 조장한다는 우려 섞인 토론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사실 그들은 말합니다. 이건 '간호사법'이 아니라 '간호법'이라고. 지역간호의 안녕을 위한 법이라고.
어쩌면 저들이 만들려는 법도 병원이 멈추지 않게 하려는 또 다른 '선원법'일지도 모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나는 아내의 거친 손을 가만히 잡았습니다.
“당신은 환자 옆을 지키고, 나는 바다 위를 지켜야 되네.”
“맞아. 계속 그렇게 지켜야 되겠지.”
배에는 브레이크가 없습니다. 환자의 숨소리에도 브레이크는 없습니다.
우리 역시 스스로 멈출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부리는 '그들' 또한 그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법은 그 멈출 수 없는 관성을 이용해 시스템을 굴릴 뿐입니다.
법이 누구를 지키는지 여전히 확신할 수 없습니다.
법은 만들어지고, 거부되고, 다시 논쟁의 도마 위에 오르기를 반복하겠죠. 하지만 내일도 아내는 병원으로, 나는 바다로 향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밤만큼은, 법보다 가까운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손을 맞잡고 있습니다.
우리의 사랑에도 브레이크는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