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속력으로 도망친 배 : 우리는 왜 영웅화 하나.
며칠 전 뉴스에서 한 척의 유조선이 화제가 되었다.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된 긴박한 상황 속에서 한국으로 향하던 유조선이 전속력으로 해협을 통과했다는 소식이었다.
기사의 표현은 꽤나 비장했다.
“전속력으로 돌파”
“위기를 뚫고 도착한 원유”
“위험을 무릅쓴 용기 있는 항해”
인터넷 댓글도 비슷한 열기로 가득했다.
용맹하다, 빠르다, 역시 한국 선박이다...
찬사가 줄을 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기사를 보며 조금 위화감이 들었다.
그 배는 정말 용감했던 걸까,
아니면 단지 운이 좋았던 걸까.
나는 선원이다.
배에서 일하는 이들에게 바다는 낭만의 공간이 아니라 철저한 '리스크 관리'의 공간이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은 더욱 그렇다. 세계 원유 물동량의 대동맥이지만, 동시에 분쟁의 불씨가 지펴질 때마다 가장 먼저 긴장이 치솟는 화약고다.
선원들에게 이곳은 ‘용감하게 돌파해야 할 곳’이 아니다. ‘가능하다면 피하고 싶은 곳’이다.
실제로 위기가 닥치면 대부분의 선사는 항로를 우회하거나 속도를 늦춘다. 치솟는 보험료와 선박 공격의 위험, 무엇보다 선원의 생명이 불확실해지기 때문이다. 바다에서 영웅이 되는 것보다 중요한 명제는 단 하나, '무사히 돌아오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뉴스의 톤은 사뭇 달랐다. 마치 한 척의 배가 거친 파도를 뚫고 적진을 돌파한 영웅처럼 묘사된다. 하지만 선원의 시선으로 본 그 장면은 전혀 다른 그림이었다.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실존하는 상황에서 속도를 높여 통과하는 행위. 이것을 다른 말로 바꾸면 '돌파'보다는 '도망'에 가깝다. 위험 구역에서 최대한 빨리 벗어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인 셈이다.
더구나 이런 결정은 현장의 선원이 내리는 경우가 드물다. 배는 회사와 자본으로 이루어진 수백,수천억원의 거대한 자산이다. 항로와 일정은 자본의 논리에 따라 결정된다. 하루 지연될 때 발생하는 천문학적인 비용, 항만 슬롯과 화물 계약, 정유 일정...
이 촘촘한 그물망 속에서 "일단 지나가 보자"라는 판단이 내려지고, 선원들은 그 위태로운 판단의 끝단에 서서 일할 뿐이다.
바다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다. 많은 항해가 용감해서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기에 성공으로 기록된다는 것을.
만약 드론 한 대가 접근했다면, 작은 미사일 경보라도 울렸다면 뉴스의 제목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아마 “전속력 돌파”는 “위험 해역 무리한 통과”나 “안전 불감증이 부른 참사”로 돌변했을 것이다. 성과와 사고 사이의 거리는 종이 한 장 차이보다 가깝다.
우리 사회는 결과를 너무도 사랑한다.
성공하면 용기 있는 결단이 되고, 사고가 나면 무모한 고집이 된다. 하지만 그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저 결과라는 주사위가 어디로 던져졌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해외 외신을 살펴봐도 Eagle Vellore호에 대한 영웅 서사는 찾아볼 수 없다. 그저 긴박한 정세 속에서 발생한 '이례적인 사례'로 다뤄질 뿐이다. 선원의 입장에서 추정해 보건대, 이는 위험한 상황에서 회항이 불가능한 위치에 맞닥뜨려 부득이하게 전속력을 낸 것에 가깝다. 비유하자면, 이미 노란불이 켜진 교차로 한복판에 진입해버린 차량이 사고를 피하기 위해 가속 페달을 밟은 것과 다름없다. 그것이 칭송할만한 일일까?
하지만 우리 사회의 성취 위주 서사는 위험을 감수하고 트로피를 쟁취하는 것만이 정당한 삶이라 속삭인다. 이러한 '위험의 정당화'가 우리 사회 곳곳에 스며들어 있기에, 어쩌면 코스피의 급등락조차 그 불안한 심리의 반영일지도 모른다.
언론이 영웅담을 소비하는 동안, 화제가 된 그 유조선은 아마 조용히 다음 항로를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배 위에는 영웅이 없다. 그저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는 선원들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바다에서는 언제나 이 말이 가장 무겁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