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05. 24살 - 부산, 해양대

이건 해군이잖아요...

by 송대근
마치, 세 번째 입대


해양대에 온 것까지는 좋았으나, 해양대는 엄격한 규율을 가지고 있는 학교였습니다.


제복을 입고 생활해야 하고, 1975년에 지어진 노후 기숙사에서 단체생활이 의무화되어있죠.


사실, 21개월 육군 복무하고 +6개월 연장하는 것도 쉽지 않았는데 이걸 4년을 해야 한다니!


남들 가는 군대 세 번 가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뭐, 열심히 노력해서 합격한 만큼 뿌듯은 하더라고요.


그리고 아직 싸늘한 공기가 가시지 않은 1월, 저는 해양대 적응교육에 참석합니다.


정문의 우뚝 솟은 앵커탑을 바라보면 형용할 수 없는 압박감이 듭니다.


수많은 신입생들 사이에 섞여, 간단하게 학교 등 설명을 듣고 지급된 체육복으로 갈아입습니다.


그리고 저녁식사를 마친 뒤, 체육관으로 저희를 데려가더군요.


친절하게 데려가는 건 아니고, 군인식으로 두줄 맞춰 졸졸졸 따라갑니다.


그리고 약속의 시간이 옵니다.



지금부터 편의상 말 놓겠다.
총원 대가리 박아!!


우왕좌왕, 난리가 납니다.


갓 20살이 되어 이런 폭력적 상황에 처음 노출된 신입생들은, 박을 줄도 모르는 대가리를 어떻게든 박아보려 머리를 찧어보기도 합니다.


일부는 날라차기(?)를 맞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동기들 사이에서 여유가 있었습니다. 군대에서 이미 다 해봤거든요!


'쇼 할 때가 됐지?'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대가리도 박고, 얼차려도 받으면서 시간을 보냅니다.


한 참을 휘둘더니, 미용실로 우르르 끌고 가 규정에 맞도록 머리도 밀어버립니다.


기숙사에 가두고 핸드폰, 담배, 시계, 기타 교육에 방해될 만한 것은 전부 압수합니다.


'5일이면 끝나니까 뭐'


군대에선 8주간도 해 봤으니 저에겐 애교 수준이었습니다.


그렇게 적응교육을 무사히 마치고 나면 해양대의 일원으로 인정받게 되고, 해대 1학년 생활이 시작됩니다.



하지만 그 1학년 생활도 녹록지가 않습니다.


[07시 아침점호->구보->조식->오전수업->중식->오후수업->석식->저녁과업->22시 저녁점호->취침]


의 일과가 계속 반복됩니다.


저녁과업은 요일별로 다른데요,

월 : 자습/대피훈련

화 : 자습

수 : 위생점검

목 : 복장점검

금 : 과실교육

토 : 상륙

일 : 귀교집합


주로 이런 구조로 반복됩니다.


각종 점검이 만족스럽지 않으면 벌점을 받게 되고, 벌점이 쌓이면 금요일에 나가 놀지 못하고 얼차려나 받아야 합니다ㅠ


어떻게든 일주일을 버텨내면, 토요일엔 학교 밖으로 나가 자유를 만끽하는데, 이때 품위를 지키지 않으면 1시간가량 일요일에 다 같이 얼차려를 받게 됩니다.


그런데, 한창 피 끓는 20대 청춘들이 어디 품위를 지키겠습니까? 술 먹고 싸우고 그런 일은 빈번하고요, 애인 손잡고 다녔다는 둥, 모자를 잃어버렸다는 둥 건수 잡을 건 넘쳐납니다.


일요일은 그냥 얼차려 받는 날인 겁니다~^^


오죽했으면 선데이 스포츠라고 불렀으니까요ㅎㅎ


규율이 엄격하고 육체적으로 힘도 많이 들긴 하지만, 분명한 장점도 있습니다.


기숙사도 무료고, 제복을 지급하니 사복 입을 돈도 안 들고요. 삼시 세끼도 다 나옵니다.


무엇보다도, 해양대 학생들은 군대 대신 배를 3년간 탑니다. 어차피 배 탈 사람이라면 군대 안 가도 되는 것이죠!


뭐... 저는 벌써 군대를 다녀오는 바람에 그 혜택은 못 누리지만, 이게 또 졸업하고 취직할 때 장점으로 작동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등록금도 1년에 400만 원 수준으로 저렴합니다만, 그래도 돈 없는 학생에겐 다 빚으로 남는 것이죠.


[24세 자산 -1160-400 = -1560만원]


혹시라도 해양대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이 이 글을 보게 된다면, 엄격한 규율에 관해서는 너무 겁먹지 않아도 됩니다. 벌써 10년 전 이야기고 요즘은 많이 편해졌다고 합니다. 기숙사도 신축으로 바뀌어서 깨끗해졌고요.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04. 23살 - 노량진, 재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