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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25살 - 인천, 닭갈비집 알바

장사를 배우다

by 송대근
흥망성쇠


이번 이야기는 이미 폐업한 매장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현재 영업 중인 점포들과는 전혀 관련이 없음을 사전에 밝힙니다.


해양대 생활이 아무리 힘들다 한들, 그래도 대학입니다.


대학이라면 당연히 방학도 존재하는 것이죠!


네, 저는 방학중에 본가로 올라와서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학비가 아무리 저렴하다고는 하나, 그래도 방학 한 달간 빠듯하게 벌어가서 쓸 용돈 정도는 필요했거든요.


조금 특이한 상황이, 저는 신규로 개장하는 매장의 초창기 멤버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습니다.


본점에 가서 3일간 교육도 받았고요.


테이블 세팅, 포스기 설정, 음악 설정, 직원 동선 정립 등 초창기에만 할 수 있는 경험들을 했습니다.


저는 홀 서빙 담당이었지만, 이곳의 시스템은 홀이 꽤 할 일이 많았습니다.


1. 매장 설명

매장에 처음 오셨냐고 물은 뒤, 처음이시라면 매장설명을 해 드립니다. 닭갈비에 들어가는 재료들, 매장 이름의 의미, 무제한 이용 가능한 부분들, 중간 사리추가 불가 사항,


꽤 많이 떠들어야 합니다!


2. 샐러드

샐러드는 홀에서 만들어져 나갑니다. 양배추와 드레싱은 미리 준비해 두었다가 냉장고에 보관합니다. 필요에 따라 소분해서 서빙합니다.


잘 안 드시긴 해서 거의 버리는데, 가끔 여성 손님들은 맛있다며 리필을 요청하시곤 합니다.


3. 묵사발

묵사발도 나갑니다. 묵은 냉장고에 소분되어 준비되어 있고, 약냉동고에 동치미 육수가 보관되어 있습니다. 샐러드와 마찬가지로 홀 직원이 준비해서 서빙까지 이어집니다.


묵사발 맛이 복불복이 있는데, 약냉동고 온도세팅이 적절하지 못하면 육수가 얼어버려서 맛이 짜집니다!


그래서 생각날 때마다 육수가 얼었나 확인해서 얼지 않게 저어줘야 합니다.


4. 닭갈비 한판

기본 식기와 샐러드, 묵사발까지 서빙하고 나면 이제 주방에서 닭갈비가 나올 시간입니다.


테이블로 옮겨 불을 켜고, 익혀줍니다. 돌아다니면서 손님 상에 있는 닭갈비들을 타지 않도록 한 번씩 봐줘야 합니다.


대부분은 좀 익나 싶으면 손님들이 저어 주시는데, 정말 손 하나 안 움직이시는 분들도 가끔 계십니다. 그럼 정말 잘 케어해 드려야 합니다.


양념닭갈비는 불에 잘 탑니다!


5. 계란찜

닭갈비가 익어갈 때쯤 되면 주방에서 계란찜이 나옵니다.


요즘은 저런 화산계란찜이 흔해졌지만, 당시에만 해도 손님분들이 많이 신기해하셨습니다.


간혹 조리법을 물어보시는 분들도 계시는데, 저희도 서빙이라 모릅니다! 죄송합니다ㅠㅠ


6. 고르곤졸라 피자

피자는 계란찜과 동시에 주방에서 나옵니다.


사실 이 피자는 딱히 문제를 일으키는 친구는 아닙니다만, 피자와 계란찜을 양손에 동시에 들어야 하는 상황이 문제입니다!


계란찜은 당연히 펄펄 끓듯이 뜨겁고 무겁고, 피자는 얇고 가벼워서 균형을 놓치면 떨어집니다!


7. 날치알쌈

이제 나갈 음식은 홀을 가장 바쁘게 만드는 날치알쌈입니다.


이건 홀에서 만들어져 나가는데, 가운데 있는 콩나물파절임은 큰 문제는 없습니다.


하지만 아래쪽의 깻잎을 꽃장처럼 예쁘게 펴고 날치알 반스푼씩 하나하나 올립니다.


게다가 이 친구는 무한리필 상품이라서 엄청나게 자주 시킵니다!


오죽했으면, 홀 직원들은 시간 남으면 날치알쌈만 만들고 있었습니다!


8. 볶음밥


마지막으로 자체 난도가 높은 볶음밥입니다.


닭갈비를 다 드시면 볶음밥 요청을 하시는데요, 손님이 남긴 소스량을 적절히 확인해서 조리해야 합니다.


당연히 처음 온 직원들은 잘 못하고요, 경력이 좀 있는 직원들이 볶음밥을 만듭니다.


근데, 손님들이 불판 앞에 앉아계시다 보니 직원들을 팔을 길게 뻗어서 불판에 밥을 볶는 일이 자주 벌어집니다.


정말 허리 부러집니다ㅠㅠ


게다가 경력직원이 볶음밥을 하는 동안 5분가량 소요되는데, 그동안 홀 직원은 한 명이 없어진 것과 같습니다! 계산과 무한리필 오더가 동시에 나온다면, 홀이 정체되게 됩니다!



위 모든 것들이 기본세팅입니다.


뭐가 많죠? 그러다 보니 테이블에 음식 놓을 자리가 없는 경우가 아주아주 빈번하고 아주아주 큰 문제였습니다.


손님들조차도 앞접시 두실 공간이 부족해서, 그릇 치워달라는 요청이 아주 많았거든요.


그런데 이제 와서 테이블을 넓힐 수도 없고... 고질병으로 안고 가게 되었죠.


처음에 장사는 잘 되었습니다. 평일 매출도 80만 원 대는 나왔고, 주말에는 300만 원에서 많게는 500만 원까지도 나온 적도 있었습니다.


매장은 4인 테이블 15석이었고, 초기엔 홀 3명 주방 2명 구조로 운용됐으나, 추후 홀 2명 주방 1명으로 인원정리는 했습니다.


저는 홀 직원이기에 손님들과 직접적으로 자주 부딪힙니다. 그래서 불만족 사항이 뭔지 말씀하진 않으셔도, 어디 어디에서 불편함을 느끼시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본 매장의 구조결함으로 테이블도 넓힐 수 없었고, 에어컨 바람도 골고루 퍼지지 않았으며, 홀직원의 업무정체도 빈번히 발생했습니다.


불쾌한 경험을 하신 손님들께서는 재방문하지 않으셨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오픈빨이 지나자, 매출은 평일 30만 원, 주말엔 힘겹게 100만 원을 찍거나 그 이하일 때도 많아졌습니다.


결국 사장님은 원재료에 손을 댑니다.


다리살 100% 가 아닌, 안심을 섞은 것이죠.

닭갈비 토핑재료인 새우의 숫자도 줄였습니다.

날치알쌈의 날치알조차도 줄였습니다.

무한리필 음료수를 보충하지 않았습니다.

메뉴에 없는 막걸리도, 편의점에서 사 와 팔았습니다.


당연하지만 손님들은 모두 알아차리십니다.


그나마 가게를 좋아해 주시던 분들도 더 이상 찾지 않게 됩니다. 가게가 바뀌었으니까요. 손님은 더 줄어들고 매출도 감소합니다.


이제 직원을 줄입니다. 최후에 매장은 주방 1명으로 운영됐습니다.


주방직원이 홀 업무까지 동시에 진행한 것이죠.


하지만 앞서 보셨다시피 본 매장은 음식가짓수가 매우 많습니다.


주방 1명으로 올바른 서비스가 제공될 리 만무합니다.


결국 매장은 3년 만에 문을 닫고 맙니다.



일련의 과정을 모두 보면서, 저는 장사의 흐름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잘못된 시스템이 있다면 그 결과는 분명 부정적입니다. 무모한 시도를 하기보다는 시스템을 개선해야 합니다.


또한 얕은 수로는 어떤 결과도 얻어 낼 수 없음을 믿게 된 것입니다.


철저한 설계, 정직과 진심, 그것이 세상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것임이 분명합니다.



깨달음과는 별개로 알바비는 모두 용돈거리로 소진되었습니다 ^^; 학비도 당연히 빚으로 남았고요.


[25세 자산 -1560-400 = -196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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