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거리는 승선실습
해양대에서의 2년을 보내고 3학년이 되면, 승선실습을 나가게 됩니다.
졸업 후 취직할 해운회사들의 선박에 실습생 신분으로 승선하게 되는 것이죠.
실습 회사는 보통 학점, 토익 순으로 결정됩니다.
저가 3학년 시절에는 LNG 선박과 한진해운 등이 가장 인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학점이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저는 인기 있는 회사는 가지 못했습니다.
'생활이 그래도 좀 편한 배가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저는 카캐리어를 선택합니다.
카캐리어는 자동차를 수출입하기 위해 만들어진 배로, 제가 실습했던 선박은 약 7000대의 승용차를 싣을 수 있는 크기였습니다.
주로 한국에서 자동차를 싣고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여 유럽 각지에 하역한 뒤, 다시 유럽의 차량을 싣고 아시아로 돌아와 하역하는 스케줄이었습니다.
한번 유럽에 다녀오는데 3달 정도 시간이 소요됩니다.
당연히 선박에서 전화가 될 턱이 없고, 느리게나마 위성통신으로 인터넷 연락이 조금 되는데요, 당시에는 그 인터넷마저도 제한되는 선박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선택한 회사는 무려 월 2Gb 나 개인 데이터를 지급해 줬거든요!
어찌 보면 와이파이로 회사를 선택하느냐 싶어 보이겠지만, 왕복 3달 동안 한 선박 내에서 고립된 생활을 하면 많이 지치기 마련입니다.
그나마 유일한 소통인 인터넷이라도 되어야, 가족 간에 연락도 하고 지낼 수 있지요.
또 제가 선택한 회사는 군필자들을 우대선발 하는 회사였습니다.
실습을 잘하면 취직까지 연계되는 점을 고려해서, 저에게 가장 맞을 듯 한 회사를 골랐습니다.
실습일이 다가왔습니다.
부산 소재의 회사에서 실습생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하지만, 그곳은 저의 근무지가 아닙니다.
제 근무지는 선박이기에 저는 집결지로 출근하게 됩니다.
[웹발신 : X월X일 13시 평택역 2번 출구 우측 방면 핸드폰 가게 앞에서 집결 바랍니다. XXXX 대리점]
위와 같은 형태의 문자연락을 받게 됩니다.
대리점? 우리 회사 이름이 아닌데? 여기가 맞나?
하필이면 저 혼자 승선하는 일정이어서 저는 두려움이 더 컸습니다. 혹시 놓치면 어떡하지?
커다란 캐리어를 들고 약속장소에서 멀뚱히 서있자 발치에 봉고차 한대가 멈춰 섭니다.
"프라이드 가세요?"
수긍하자 기사님이 내려서 봉고차에 짐을 실어주십니다. 그리고 승선에 필요한 여권, 각종 서류등을 확인하고 법무부를 거쳐 선박까지 저를 데려가십니다.
그냥 가만히 있으면 각종 절차는 다 알아서 해 주십니다.
그렇게 한두 시간가량 지루한 시간을 보내고 나면 점점 항구에 가까워지기 시작합니다.
창밖에서 부두의 모습이 보이고, 점차 바다가 보이기 시작하면 우리 배에 다 왔구나 싶어 집니다.
이윽고 기사님이 말씀하십니다.
"다 왔습니다."
막상 보면, 배라기보다는 상자나 건물 같죠?
다른 배들과는 다르게 카캐리어는 스턴램프라는 다리를 통해 배의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원래 자동차를 싣는 배이기에 차들이 들어올 수 있는 도개교가 배에 달려있는 것인데, 사람들도 그쪽을 통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캐리어 바퀴가 드륵드륵 갈리는 소리를 내며 배의 안으로 들어갑니다. 아, 이제 시작이구나 싶습니다.
다행히 선박에 계신 선장님 이하 모든 사관분 들은 제가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고, 5개월간의 실습을 마치고 건강하게 하선합니다.
당연하겠지만, 선박기관사로서 업무는 잘 배웠고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들로는 해외항구에 도착했을 때, 상륙 나와 관광한 기억이 남습니다.
제가 상륙 나간 항구는 아래와 같습니다.
상하이, 중국
제벨 알리, 두바이
피사, 이탈리아
바르셀로나, 스페인
포트 아벤츄라, 스페인
포르토, 포루투갈
르 아브르, 프랑스
안트베르펜, 벨기에
브레머하펜, 독일
사우샘프턴, 잉글랜드
꽤 많죠? 네 저도 배 타고 다니면 해외여행(?) 다니고 좋다고 착각할 정도로 많이 나갔다 왔습니다.
사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정작 선원들은 항구에 입항하면 할 일이 많아서 나가 놀 시간이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실습생이라 돈도 못 벌고 불쌍하니 상륙이라도 배려받은 것이었습니다.
실습생은 한 달에 30만 원가량의 용돈 말고는 따로 월급 같은 건 없습니다ㅠㅜ
그리고 왠지 모르게 학교에서 등록금도 내야 하고요.
학교에 안 다니는데 등록금을 왜 내야 하지?? 이 부분은 지금도 의문은 남습니다만, 아무튼 냈습니다.
그렇게 26살의 제 자산은?
[26살 자산 -1960-400=-2360]
네, 또 빚이 늘었습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