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멈추고 에세이를 시작한 이유

by 송대근
나는 소설로 글쓰기를 시작했다.


20대 중반의 5년이라는 시간을 꽤 집요하게 쏟아부었다.


그것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었다.

밤을 새워 세계관을 구축하고, 입체적인 캐릭터를 설계하며, 흩어진 사건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 나가는 과정 그 자체를 사랑했다.


작은 공모전에서 수상의 기쁨을 맛보기도 했고, 그 결과물이 모바일 게임으로 제작되는 성과도 거뒀다.


적어도 나에게 소설은 '언젠가 내 삶의 가능성이 만개할 영역'이었고, 이야기로 생계를 꾸릴 수 있다는 순진하지만 단단한 믿음이 있었다.



​전환점은 2020년, 코로나 시절 한 프로젝트에서 찾아왔다.

생성형 AI 모델을 이용해 게임을 만들어보자는 제안이었다.

당시만 해도 대중에게 생소한 기술이었지만, 나는 그 제안을 수락했다.

덕분에 기술의 잠재력과 그 성장 속도를 누구보다 가까이서, 그리고 처절하게 체감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흥미로운 시도"라며 가볍게 여겼다.

하지만 결과물은 예상보다 훨씬 정교했다.

물론 초기 모델이라 완성도는 낮았고 시장의 평가도 갈렸지만, 나는 그 너머에 도사린 거대한 변화를 직감했다.



​내가 수많은 밤을 지새우며 공들여 쌓아 올리던 것들을, 허무할 정도로 쉽게 뱉어내는 존재.


​그때부터 말로 설명하기 힘든 이질적인 감각이 나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애써 그 존재를 부정하며 마음의 방어선을 쳤다.


'그래봤자 기계가 인간의 감정까지 담아내겠어?'

'서사의 깊이는 결코 인간을 따라오지 못할 거야.'

그렇게 믿고 싶었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설정은 나보다 빨랐고, 문장은 매끄러웠으며, 플롯의 구조는 안정적이었다.

내가 며칠을 붙잡고 괴로워하며 고민하던 장면이 단 몇 초 만에 수십 가지 버전으로 출력되는 것을 지켜보며,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 이것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판도를 완전히 뒤흔드는 존재다.



​그 순간부터 나의 질문은 본질적으로 바뀌었다.

'어떻게 하면 더 잘 쓸까?'가 아니라, '이 존재 앞에서 나는 무엇을 써야 하는가?'라는 질문이었다.


예전에는 소설이 인간만의 고유한 영토였다.

상상력은 희소한 자원이었고,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치가 있었다.

그래서 '잘 쓰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귀한 대접을 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야기는 도처에 넘쳐난다.

설정, 캐릭터, 전개 방식은 이제 명령 한 번으로 무한히 생성할 수 있다.

소설이라는 장르가 가졌던 생산의 희소성은 무너졌다.


이 지점에서 나는 선택해야 했다.

이미 무너진 경계 안에서 기계와 속도 경쟁을 이어갈 것인가, 아니면 아예 새로운 판으로 나아갈 것인가.



​나는 후자를 택했다.

그리고 에세이의 세계로 넘어왔다.



​누군가는 묻는다.

"그렇게 좋아하던 소설을 왜 이제 안 쓰세요?"

나는 이렇게 답한다.

"안 쓰는 게 아니라, 지금은 다른 방식으로 쓰고 있는 겁니다."



​소설은 허구다.

아무리 정교하게 세공해도 결국 '만들어진 이야기'라는 태생적 한계를 지닌다.


반면 에세이는 다르다.

내가 실제로 살아낸 시간, 내가 내린 선택의 기회비용, 처절한 실패와 그 끝에 얻어낸 결과물이 글의 유일무이한 재료가 된다.



​이것은 결정적인 차이를 만든다.

바로 '증명'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AI는 매혹적인 이야기를 지어낼 수는 있지만, 그 문장에 책임을 지지는 않는다.

자신이 뱉은 문장을 삶으로 살아내지도 않는다.


그래서 나는 확신하게 됐다.

이제는 '무엇을 상상했는가'보다 '어떻게 살았는가'가 작가의 가치를 결정하는 시대라고.


​나는 더 이상 종이 위에서만 존재하는 이야기 속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내 문장이 진짜라는 것을 삶으로 증명하고 싶었다.


투자도 마찬가지다.

이론은 누구나 말할 수 있지만, 실제 내 돈을 넣고 흔들리는 시장 속에서 고통을 견디며 선택하는 과정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인간관계 또한 그렇다.

그럴싸한 조언은 누구나 하지만, 위기의 순간에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가 그 사람의 본질을 정의한다.

​결국 모든 가치는 하나로 수렴한다.


증명



​그래서 나는 방향을 틀었다.

허구를 잘 꾸며내는 기술자가 아니라, 삶을 통해 자신의 말이 증명되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물론 소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여전히 소설을 사랑하며, 그것이 가진 예술적 가치를 믿는다.

다만 지금의 나에게 더 절실한 것은 '잘 만든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살아낸 이야기'일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삶에 밀착된 글을 쓰다 보면 언젠가는 다시 소설을 쓰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의 소설은 예전과 분명 다를 것이다.

머릿속 상상으로 직조한 이야기가 아니라, 삶을 온몸으로 통과해 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단단한 이야기가 될 테니까.



​나는 소설을 포기한 것이 아니다.

그저 순서를 바꾸었을 뿐이다.



먼저 뜨겁게 살고, 그다음에 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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