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32살 - SUN SHINE

생애 최고 똥배

by 송대근
조심해라, 여긴 진짜 죽는다.


Horizon 호에서 하선 후, 휴가를 보내던 저에게 인사과에서 연락이 옵니다.


"이기사님, 일기사 진급으로 Sun Shine 호 승선하시죠."

또 한 번 올 것이 왔습니다. 네, 이전에도 이야기했던 똥배입니다.

역시나 진급을 미끼로 배승연락이 왔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진급하지 못하면 또 언제 진급할 거란 보장도 없으니 저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배는 모습부터 무척 독특합니다.



작은 배들을 실은 큰 배. 저 배가 제가 탈 배입니다.


중량물운반선이라고 하는 배인데, 컨테이너선이나 카캐리어, 석탄운반선처럼 특정한 형태의 화물을 옮기는 배가 아니라, 위에 싣을 수 있는 모든 형태의 화물을 싣는 배입니다.


사진과 같이 작은 배도 싣고, 풍력발전기, 조선소 선박블록, 해상크레인 등 올라가는 모든 종류의 화물을 싣을 수 있습니다.



세월호 인양에서도 중량물 운반선을 이용해서 운반하게 되었죠. 정기적인 계약이 아닌 매우 특별한 상황에서 프로젝트 단위로 움직이는 선박입니다.


동기 선원들은 승선을 만류했습니다. 사람이 세명이나 죽은 배이기도 하고, 업무로드가 높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똥배이지만 특수한 배인 만큼, 소수의 사람들만 해당 선종의 경험을 가지고 있기에 향후 저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믿고 승선합니다.


마침 코로나 상황이라 비행기를 통한 출국이 어려운 상황이었기에, 부산에서 승선하게 됩니다. 착잡한 마음으로 승선날 부산역 인근 중국집에서 점심 식사 중이었는데, 휴대폰에 문자가 하나 옵니다.


오고 있냐?

네, Horizon 호에서 함께 승선했던 기관장님이셨습니다. 당시 많이 배우면서 승선했고 또 존경하는 분이었기 때문에 Shine 호에 기관장님이 계신다는 것이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나중에 배에 올라가서 왜 미리 말씀해 주시지 않으셨냐 물으니,


미리 말하면 도망갈까 봐 그랬다.

라며 너스레를 떠시더라고요. 아휴, 제가 기관장님 계신다면 믿고 가면 갔지 도망가진 않습니다ㅎㅎ

덕분에 의지하며 건강히 승선할 수 있었습니다.




아직 선박이 운항 중이고, 저도 회사에 소속되어 있어 자세한 내용을 적긴 어려우나, Shine 호는 기관실 온도가 치명적인 문제인 선박이었습니다.


다른 배들은 보통 45도 이상 올라가지는 않는데, 이 배는 구조적 결함으로 50도 이상, 가장 더운 곳은 60도까지 올라갔거든요.

기관실 안에 들어가면 문고리가 뜨거워서 만질 수 없고, 얼음조끼를 입고 30분씩 교대로 작업을 해야만 했습니다.


너무 덥다 보니 선원들이 제대로 작업하기가 어렵고, 그러다 보니 정비누락이 누적되어 기관실의 전반적인 컨디션도 좋지 않았습니다.

또 다양한 화물을 싣기 위한 잦은 개조 반복으로 선체변형도 있었고요.


제가 승선할 때 72kg이었는데 5달이 채 안되어 66kg 이 되었거든요. 업무 부담이 상당한 선박이었습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일등기관사로 진급하기 위해서 제가 견뎌내야 할 일이라 생각하고 버티는 느낌으로 승선했습니다.




일등기관사로 진급하게 되면서 가장 좋은 점은 급여가 상당히 오른다는 것입니다!

이등기관사 때까지는 월 400만 원 투자하고 있었지만, 일등기관사가 되면서 월 600만 원으로 투자금을 올리게 됩니다. 덕분에 제 자산증식도 좀 빨라지겠죠?


아쉽게도, 아니었습니다.


이 해에는 1년 간의 주식 하락장이 펼쳐졌고, 제 자산은 속절없이 녹아내립니다ㅠㅜ

물론 하락장에서도 저는 자동매수 전략을 계속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바다 위에서는 그것 말고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결국 오를 거야! 라는 믿음으로 계속 물타기 하는 것이죠ㅠㅜ


그렇게 32세 제 자산은?



투자자산은 -2700만원으로 하락을 면하지 못했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이때 해운호황이 찾아옵니다.


덕분에 회사에서 성과급도 많이 나왔고요. 그렇게 현금자산을 3천만 원 정도 확보하게 됩니다.



32살 순자산 1억 4천

주식이 떨어지니 해운이 호황이라니... 인생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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