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9
22살의 일이다.
당시 전문하사로 근무 중이었는데, 이때 나의 주부형 알코올중독이 고착화된 시기라고 본다.
나는 부대 내 관사에서 살고 있었는데, 군부대가 인가에서 먼 산중에 있고 주변에 친구도 없다 보니 퇴근 후에는 늘 술을 먹는 것이 일상이 되어 버렸다.
퇴근 후 저녁이 되면 TV를 틀고 소주와 사이다를 섞어 마셨다. 지금의 음주습관과 똑같다.
당시엔 군납주류를 부대간부들이 한 달에 두 박스씩 의무적으로 구매하게 되어 있었는데, 내가 술을 마시지 않는 간부들의 할당량까지 구매했다. 그럼에도 술을 매일 마시다 보니 월 말이 되어가면 술이 떨어져 버렸고, 같이 관사를 쓰던 타간부의 술까지 조금씩 훔쳐 마셨다. 그 훔쳐마실 술마저도 떨어지게 되면 술을 사러 시내에 나갔다. 당시 가까운 마트까지는 왕복 1시간 정도 걸렸는데, 군부대의 지리 특성상 차편이 별로 없어 걸어가야 했다.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퇴근 후엔 조금이라도 빨리 술을 마시기 위해 곧바로 마트까지 직행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마실 술을 사 와서 냉장고에 시원하게 넣어둔 뒤, 그동안 샤워를 마치고 끝나는 대로 술을 마신다. 술에 취하면 기절한 듯이 잠에 들고 또 하루가 시작된다.
행정반에서 근무했던 나는, 오전동안에는 숙취에 시달려 헛개나무차나 마시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오후가 되면 일을 좀 했다. 그리고 오후 4시쯤 되면 몸 컨디션이 되살아나서 다시 술 생각이 나게 되고 이것이 꾸준히 반복되었다.
6개월 간.
그렇게 전역일은 다가왔다. 전역을 일주일 앞두고, 나는 주말에 부대원들을 관사에 불러 막걸리와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문제는 당시 북한과의 상황이 좋지 않아, 경계태세였다는 점이다.
나는 자신의 전역을 앞둔 설렘, 동고동락한 부대원들을 챙기고 싶다는 명분을 앞세워 술판을 벌인 것에 불과했다. 결국 상황은 부대장에게 보고되었다. 비록 구두경고로 끝나긴 했으나 불명예스러운 일이다.
군대도 결국은 하나의 직장이다.
직장은 가족이 아니니 필요에 의해 결속되어 있다. 잠시 내가 필요해서 나의 음주충동을 허용한 것뿐, 내가 필요 없어진다면 가차 없이 내버릴 것이다.
직장에서 요구하는 업무, 특히나 군인의 경우 그 책임감과 의무감으로 어떠한 상황도 지켜내는 또렷한 정신이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개인의 욕망을 위해 요구되는 의무를 내팽개쳤다. 그 어떤 직장도 책임감 없는 사람을 오래 채용하려 하지 않을 것이며, 결국 내쳐지게 되겠지.
술은 나의 책임감과 명예를 녹여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