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12
정말 믿을 수도 없게도, 금주하다가 짜증이 났다. 평소 음주충동은 나에게 협상을 거는 전략을 사용하는데, 최근 나는 타협하지 않는 노선을 정한 바 있다. 그 이후로 며칠간 아무런 음주충동이 생기지 않아 정말 만족스러웠는데, 오늘 금주하는 내 모습에 짜증이 났다.
짜증이라?
짜증이 난 이유는 이렇다. 금주를 하는 것 자체가 무언가에 얽매여 제한되고 옥죄이는 느낌이 든 것이다. 나는 본래 자유를 중시하는 성격이라, 금주가 나의 자유(음주의사)를 침해했다고 생각이 들자 짜증이 몰려온 것이었다. 그리고 이 짜증을 해소하는 방법은 음주겠다.
그러나 밀려오는 짜증과 동시에, 논리의 모순을 느꼈다. 그 누구도 나에게 금주하라고 강요하거나 억압하지 않았으며, 오롯이 내 의사만으로 금주를 시작하였다. 그런데 그것이 자유의사가 아니란 말인가? 나의 건강, 나의 행복, 나의 의사주권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금주가 오히려 자유를 침해한 일이라고? 이것은 자유와 방종, 도피와 책임 사이의 문제겠다.
물론 나의 의사는 오롯이 나만의 것이 아니다. 나의 성장과정, 나의 주변사람, 나의 가치관, 나의 생존환경 등 복잡하고 셀 수 없을 만치 다양한 요소가 나의 의사결정에 간섭하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만, 난수의 선택지 사이에서 결정을 내리늘 것은 최종적으로 나의 판단이다.
이것은 결국 나의 행동의 화살을 주변환경으로 넘길것이냐 나 자신으로 향할 것이냐의 문제다.
아이러니한 상황에 헛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짜증을 느낀 내 감정은 이내 증발되고 말았다. 억지논리로 어떻게든 술을 마시게 하려고 음주충동이 유발 한 모양이다. 물론 금주 도중 짜증을 느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당혹스러운 감정이었지만, 이는 나의 의지를 뒤집기는 부족한 감정이자 논리였다.
그러나 동시에, 역시나 사라지지 않고 스멀스멀 기어올라오는 음주충동의 지독함에 넌덜머리를 느꼈다. 매번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해 오면서도 절대 사라지지 않는 이 동반자를 컨트롤해야만 한다. 이 충동이 언제부터 자라나서 지금의 나의 내면 깊은 곳에 자리 잡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 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나의 감정의 기원 속, 나 스스로 들여다볼 충분한 시간이 확보되어야만 어렵사리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잠시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눈꺼풀을 가볍게 닫는다. 왜 이런 음주충동이 자라나게 되었는지 생각을 하다가, 하다가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