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13
어찌 보면 불효막심한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이 이야기를 꺼낼 때는 반드시 부모님 이야기가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글의 궁극적인 목표는, 부모님에게 나의 음주충동의 원인을 돌리려는 것이 아닌 음주충동의 씨앗이 어디에서 자라는지 확인하고 우리 후손들에게 넘겨주지 않기 위함이다.
우리 집은 음주에 관대했다. 생전에 할머니께서는 식사마다 소주를 약주로 잡수셨고, 부모님께서도 저녁에 술을 드시는 광경을 마주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버지께서는 취하시고 폭력을 휘두르시지는 않으셨지만, 거실에서 곯아떨어져 씻고 침실로 보내느라 실랑이를 벌인 기억이 많다.
심한 경우는 이런 적도 있었다.
어느 날 야심한 시간, 아버지께서 회식을 마치고 만취하셔서 직장동료들이 아버지를 집으로 모셔왔는데, 당시 우리는 저층아파트 4층에 살고 있었다. 어머니와 나는 아버지를 현관에서 인계(?) 받고 집으로 데려가려 했으나, 아버지께서는 아무리 해도 발버둥 치며 안 가겠다고 하셨다. 한참의 실랑이 끝에 결국 집에서 재우기는 했는데, 아버지가 다음날 아침 놀라운 말씀을 하셨다.
"어젯밤에 어떤 여자가 자꾸 자기네 집에 가자고 해서 안 간다고 버팅겼는데, 그게 우리 집인가?"
이미 지난 일이라 해프닝 삼아 넘겼으나, 성인이 된 이후로 나도 유사한 상황을 겪어보았기에 기분이 착잡했다.
어머니께서도 만취하도록 술을 드시지는 않지만, 다음 날 쉬는 날이라거나 친척분들을 만나실 때면 술을 자주 드신다. 술 한잔 하면서 이런저런 삶의 애환을 풀어두는 것을 좋아하시는 것 같다.
나 또한 성인이 된 이후로는 부모님과 저녁식사 중에 함께 술을 마시는 경우가 잦았다. 부모자식 간에 술 마실 수도 있는 것 아니냐 말할 수도 있겠지만, 자식은 부모의 행동양식에 큰 영향을 받는 만큼 아무런 거리낌 없이 음주문화를 그대로 배우게 된다.
내 동생도 마찬가지로 술을 마시고, 밤늦게 술에 취해 집에 돌아와도 하지 말라고 강하게 제지할 명분이 생기지 않는다. 우리 가족 모두가 술을 마시기 때문이다. 또한 어쩌다 위험음주 상태가 놓이게 되더라도 가볍게 넘어가 버릴 수 있다.
한 번은 캐나다의 Halifax라는 항구에 들어간 적이 있다. 당시 나는 술을 즐길 때인지라, 세계의 항구에 들어서면 그 나라의 맥주를 먹는 것이 취미였다. 그래서 주변 대형마트를 갔는데, 아무리 뒤져보아도 술을 팔지 않는 것이 아닌가? 허탈한 마음으로 배로 돌아갔다. 현지인에게 물어보니 캐나다는 NSLC 라는 곳에서만 술을 판매한다고 했다. NSLC? 아! 그 마트 옆에 붙어있던 곳! 나는 다시 부리나케 마트로 달려갔지만, 저녁 6시 이후로는 영업이 종료되는 곳이었다. 아쉽게도 나는 그곳에서 어떤 술도 사지 못하고 출항하게 된다.
그리고, 나는 두 가지 생각을 가지게 된다.
1. 술은 누가 뭐래도 성인용품이다.
대한민국에서 주류와 담배는 마트에서 쉽게 구매할 수 있고, 미성년자들의 눈에도 쉽게 띈다. 심지어 담배는 계산대에 존재하여 마지막 나가는 관문에서 무조건 봐야만 한다!
우리가 일본여행을 가면 돈키호테와 같은 대형마트에 자위기구 등이 버젓이 놓여있는 것을 보면 드는 기분, 그 기분과 캐나다인이 한국 마트에 술이 놓여있는 것을 보면 드는 기분이 비슷하지 않을까?
술은 결국 성인용품이니 아이들의 시야에 노출되어서는 안 된다.
2. 술은 너무 늦은 시각에 팔아서는 안된다.
대한민국은 24시간 편의점 문화가 끝내주게 잘 되어 있어서, 새벽 3시라도 술을 사는 게 어렵지 않다. 그러나 보통 밤늦은 시각에 사는 술은 이미 취한 상태이거나, 즉흥적이거나, 혹은 잘못된 행동을 하기 위한 기폭제로서 구매할 가능성이 높다. 적어도 음주를 하겠다면 해가 떠있는 동안, 정신이 말짱할 시간에 사전에 계획하에 음주를 결정해야지, 야심한 시간에 감성적인 음주충동에 의한 구매는 후회가 될 가능성이 높다.
위와 같은 생각에 의해, 대한민국은 음주에 너무나 관대하며 사회적으로도 많은 병폐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을 찾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우리의 매체 속에도 술은 몹시 쉽게 등장하며 아이들에게도 가볍게 노출된다.
나는 우리 가족에 속해있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전체 사회에 속해있다. 대한민국 국민 누구도 구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즉, 음주는 사회적 가족적 유전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