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인간의 주인이다.

DAY+14

by 송대근

태초에, 인간이 술을 처음 만들었던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인간이 술을 만든 것이 아니라, 술과 만난 것이다.

술은 효모에 의해 만들어지며 인간은 술의 맛을 탐닉한다. 결국 인간은 술이라는 보상을 얻기 위해 효모가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효모를 모시기 시작한다. 어쩌면 술은 인류 최초의 반려동물이었을지 모른다.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을 아득히 넘어서, 효모가 이를 의도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야생의 생존경쟁에 밀리는 효모라는 한낱 세균은, 생존을 위해 지구 최강의 생명체인 인간에 기생하기로 결정한다. 인간이 좋아하는 술을 만들어냄으로써 자신들은 편안한 삶을 누리는 것이다.


이렇듯 술은 인간을 지배했고, 지금도 지배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지배할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술을 끊을 수 있다'는 둥, 건방지기 짝이 없는 소리를 한다. 한 번 술을 맛본 이상 술을 끊는 것은 불가능하다. 수천 년 인류와 술의 역사가 그것을 증명한다. 인류는 술의 굴레에 빠져있으며 효모를 증식시켜 끊임없이 술을 만들어내고 있다. 각종 종교에서도 소주, 와인 가릴 것 없이 술은 빠짐없이 등장하며 신성화되어왔다. 인간 스스로를 노예로 자처할 정도로 술에게 지배당해 있다.


그런 술을 끊기 위해서, 술이라는 우리의 지배자로부터 자유롭게 탈출하기 위해서는 가벼운 '마음가짐' 수준으로는 부족하다. 추노를 상상해 보면 쉬운 일이다. 도망가려는 노예를 술이라는 주인이 쉽게 놓아줄 리가 없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붙잡기 위해 갖은 함정을 설치할 것이며 필요하다면 노예를 부숴가면서 까지 되찾으려 할 것이다. 붙잡지 못할 바엔 죽여버릴 수도 있다. 다른 노예들에게 본보기를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술을 끊으려던 수많은 중독자들은 충동의 산에 넘어졌고, 금단현상의 덫에 걸렸으며, 최악의 경우 진정섬망으로 사망에 이르렀다.


술은 인간을 죽일지언정 놓아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뒷산에 마실 나가는 수준의 채비로 금주를 선언하는 것은 곤란하다. 추노꾼에게 붙잡히면 죽는다는 마음가짐으로 뛰쳐나가야 한다. 그래도 성공할까 말 까다.


정말로 마음만 먹으면 금주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지금 당장 마시지 말아라. 그리고 영원히 먹지 않는 것, 그게 금주이다.


며칠 안 먹다 다시 마시고, 사회생활 때문에 마시고, 축하해서 마시고, 슬퍼서 마시고.

술에는 조절이 없다. 당신은 술에게 지배당하는 노예일 뿐이지, 주인을 조절할 수 있다는 건방진 생각은 버려라. 방심하는 순간 당신의 주인은 당신을 쥐어짜 내며 결국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것이다. 당신은 뼈 빠지게 일해 술님을 모시기 위해 돈을 쓸 것이며, 소중한 사람과의 시간도 술님을 뵙기 위해 소모될 것이며, 최후에는 골병들어 멍석에 말려 버려질 팔자이다. 그게 노예의 정해진 삶이다.

그런 삶에도 만족한다면 그렇게 살면 된다.


그렇지 않다면, 팔다리 하나쯤 잃을 각오로 주인과 관계를 끊어야 한다. 지금 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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