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16
금주 보름이 지났다. 금주의 효과라고 말할 거창한 것은 아니지만 몸에도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사실, 일련의 변화들이 단순히 금주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요소가 작용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그래도 내가 느껴본 대로 나열해 보려 한다.
허기
우선 배가 고프다. 전반적으로 더 많이 먹게 된 것 같다. 나는 술을 마실 때는 끼니때에 밥은 별로 먹지 않고 술과 안주를 많이 먹었다. 어찌 보면 총 칼로리 섭취량이 줄었으니 몸에서 더 많은 열량을 요구하는 것 같다. 아침에도 잠이 깨는 것보다 배가 고파서 먼저 일어나고, 점심때만 되면 몸에 힘이 없다. 저녁까지 기다리기 힘들어 간식을 찾는 횟수도 늘었다.
술을 마셨으면 얼마나 먹었을까. 보통 저녁에 안주거리와 맥주 3000cc는 가볍게 마셨다. 못해도 2,3000 kcal는 먹었을 것이다. 물론 술은 체내에 축적되지 않으니 전부 살로 바뀌지는 않았겠지만, 숙취의 여파로 다음날 아침은 생략, 점심때까지도 속이 메슥거려 적게 먹었으며 오후 2시에 숙취가 절정에 다르다. 고비를 넘기고 나면 오후 4시쯤에는 몸이 정상컨디션으로 돌아오는데, 이때 다시 술 생각이 나면서 저녁에 음주를 하는 패턴이 반복되었다.
이 커다란 한 사이클이 빠지고 나니, 부족한 열량분을 몸이 요구하는 듯하다. 원하는 대로 먹어대면 체중이 증가할 게 뻔하니 조절하려 하지만 쉽지는 않다.
생산성
생산성이라 표현하면 좀 딱딱하긴 하지만 마땅한 단어를 찾기 힘들다. 말하자면, 좀 더 부지런 해지고 효율이 좋아졌다는 것이다.
술을 마셨다면 다음날 숙취로 인해 어떤 일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며 체력적인 한계를 느껴 쉽게 그만두고 말았다. 글을 쓰는 것이나 취미활동, 운동, 하다못해 밀린 드라마조차 제대로 보지 못했다. 금주 이후로 체력이 뒷받침이 되니 이제 남는 시간 동안 나의 생산활동을 하게 되고, 그것이 누적되고 몸에 기억되면서 더 빠른 시간 안에 원하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되었다. 브런치 글쓰기도 그중 하나에 해당한다. 아이디어도 이전보다 적은 시간을 집중하더라도 끄집어낼 수 있게 되었다.
피로
피로가 사라져야하는게 아니냐 물을 수도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저녁시간에 많은 피로를 느낀다. 술을 마시면 아침시간대에 피로하고 술을 마시는 저녁시간대가 다가올수록 힘이 샘솓는다. 술을 마시면서 그 힘과 흥분은 최고점을 찍지만, 다음날 아침 바람 빠진 풍선처럼 그 기분은 온데간데없이 주저앉고 만다. 즉, 기복과 편차가 커진다. 이 편차는 나의 감정도 지배해서, 즐겁다가도 슬픈 기분이 들게 만드는, 일종의 조울증도 불러일으켰다. 감정선이 뒤틀리는 것이다.
그러나 술을 끊고 나서는 아침과 점심이 지나고 저녁이 되어서야 피로감이 찾아온다. 해가 떨어지면 피로가 찾아와 일찍 잠에드니, 일찍 일어나는 생활이 반복되고, 이는 몹시 정상적인 모습이리라.
상기한 모든 변화는 내가 좋아진 것이 아니라 이제야 조금 정상이 되었다는 신호다. 반대로 말하면, 대부분의 정상적인 사람들은 위와 같은 환경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며 나 스스로 인생의 난이도를 어렵게 만들어두었다는 소리가 된다.
어리석은 일이다.
음주충동은 크게 일어나지 않는다. 주변 동료들이 술 한잔 하자고 하면 생각정도는 잠깐 들지만 쉽게 떨쳐낼 정도다. 내일도 독자와 약속된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강하게 지배하면서 술의 유혹은 넘어설 만 해졌다. 계속해서 먹지 않다 보니 더 이상 나에게 권유하는 술약속도 줄어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느끼지도 않는다. 애초에 술이 있어야만 친해질 관계였다면 그것은 친해질 필요가 없는 관계였고, 반대로 어떻게 해도 친해질 관계였다면 술이 없어도 친해질 수 있었던 것이다.
금주가 대단한 효과를 불러오진 않는다.
그저 너무나도 멀게 느껴졌던, 정상적인 삶을 조금 느껴보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