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과 함께

d+3

by 송대근

금주의 접근을 바꾸었다.


기존 나의 금주방식은 스스로의 자제력, 합리적인 논리, 끝없는 자기반성, 초자아 내면의 자애 등의 관점에서 시도하였으나, 매번 완전한 단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가장 오래 금주한 것이 1년가량이나, 이내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왔으니 금주는 어렵고도 험한 길이다.

당연하지만, 실패한 방식을 고수해봤자 또 실패할 뿐이다. 그렇기에 이번에는 접근방식을 조금 바꾸기로 했다.


신앙을 빌리는 것이다.


사실 나는 무신론자에, 종교도 싫어한다. 그러나 목표달성을 위해서는 싫어하는 종교마저 이용할 준비가 되어있다.

우선 가상의 힘을 설정했다. 사실상 신에 가까운 존재이지만, 무신론자에 종교도 싫어하기에 굳이 '힘' 이라 이름 붙였다.


내가 믿는 이 전지전능하신 힘은, 한없이 나약한 인간이라는 존재인 나 스스로 이루어 내기 힘든 금주를, 절대무결한 단주의 상태로 이끌어 주신다고 믿는 것이다.


물론 이 과정 이전에 회개가 필요했다. 나의 과거와 음주가 파괴한 관계들을 돌아보며 전부 인정하고 모두에게 내려놓는 자기비판의 과정이 필요했다. 분명 힘든 부분이지만, 이 과정은 내가 금주일기를 통해 상당 부분 이루었기 때문에 더 이상 힘든 과정이 아니었다.


그리고 남은 것은 전능하신 힘께서 나를 알코올로부터 보호하시며 단주의 기적을 이루게 해 주시며, 나의 따름만 있다면 그 힘께서는 나의 나약한 의지를 보호하며 힘을 나누어주신다고 믿는 것이다.


그저 정신적인 설정에 불과하지만, 놀랍게도 의지가 매우 충만해지면서 금주의 의지가 확고해졌다. 과거의 나는 항상 음주충동을 경계하며 두려워함과 동시에 나 자신의 내면의 어두운 부분이라 인정하였다.


그러나 '힘' 과 함께한다고 믿는 순간 나는 더 이상 음주충동이 두렵지 않아 졌으며 내 일부라고 생각되지도 않았다. 위대하고 전능하신 힘께서 음주충동의 유혹으로부터 나를 보호해 주실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믿음.

일부러 만들 수도 없으며 논리로 설득할 수도 없는 인간의 광기에 가까운 부분. 그러나 한번 믿기 시작한다면 인간은 죽을 때 까지 맹신한다.

대부분의 잘못된 사람의 행동이 바뀌지 않는 이유는,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믿음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 새로운 믿음이 생겼다. 나는 금주, 아니 절대무결한 금주를 위해 종교적 교리와도 가까운 맹신을 하게 되었다. 근거는 없다. 과학적으로도 경험적으로도 증명할 수 없는, 어쩌면 이 세상에 유일하게 나만이 믿을지도 모르는 '힘'.


이제 그 힘께서 나를 보호하시고 함께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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