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조차 지우는 길.

딱딱하게 굳은 습관.

by 송대근

오래된 이야기다.

아직 할머니가 살아계시던 시절, 나는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할머니와 함께 지냈다.

할머니는 엄하면서도 또 괴팍하신 분이었다. 나는 밥상머리 예절로 항상 밥을 맛없게 먹는다는 말을 듣고 살았다.

당시인 주는 대로 먹어야 하는 팔자인지라, 세월아 네월아 밥을 먹긴 했으나 성인이 되고 나니 알게 된 사실은, 내가 쌀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지금도 나는 쌀을 자주 먹지 않는다.


으레 가정식이 그렇듯, 우리 집 밥상 역시 밥, 된장국, 콩자반, 김, 어묵볶음(당시는 덴뿌라 라고 불렀다.), 김치 등 고정반찬을 꺼내어 먹곤 했다.

그리고 할머니는 항상 식사에 소주를 한잔 곁들이셨다. 많이 드시진 않고 딱 한 잔.


그때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어떠한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냥 드시나 보다 했다. 장난으로 한잔씩 먹어보라 했지만 모든 아이가 그렇듯 코를 찌르는 알코올 냄새에 소리를 지를 뿐이었다.


세월이 흘러 내가 초등학교를 들어가면서부터, 우리 집은 할머니와 분가하여 살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인데, 이때도 나는 역시 쌀을 싫어했다. 당시엔 초등학교 저학년에게는 급식이 제공되지 않아서 어머니는 귀가한 내가 먹을 수 있도록 도시락을 싸두고 가시는 일이 일상이었는데, 나는 쌀이 먹기 싫어서 도시락을 담벼락 너머로 버리곤 했다. 그러한 행동이 걸려서 집에서 많이 혼났다.


그렇다고 해도 부모님이 술을 자주 드셨냐 하면, 기억에 없다. 기억에 없으니 자주 드시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내가 잠든 뒤 드신 걸지도 모른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 즘 아버지가 한번 술에 만취하여 직장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돌아오시고, 고등학교 때 즈음 아버지가 술을 드시고 지하철에서 깜빡 잠에 드셔서 소매치기를 당한 기억이 있는 것을 보면, 아마 음주는 밖에서 하신 게 아닌가 싶다. 그렇다 하더라도 술을 드시고 일상생활에 간헐적인 문제가 있으셨던 것은 분명하니 이것은 알코올 사용장애이리라.


부모님은 부정하시지만, 알코올 문제는 유전력과 가정환경의 영향력이 강하기 때문에 나 역시 독립한 후 로도 부모님 댁에 가면 음주할 기회에 자주 노출된다. 오랜만에 만나서 한잔 하면서 속마음에 있는 대화를 나누는 것을 좋아하시고 그것이 문화화되어있다. 어머니도 외가 이모들과 한자리에 모이면 맥주를 즐기신다. 물론 내가 없을 땐 많이 안 드신다고는 하시지만, 나이가 드셔서 못 드시는 부분도 크겠다.


아무튼간에 가정의 달과 어버이날을 맞아서 부모님 댁에 방문해야 하는데, 맛있는 음식에 더불어 또 술이 나올 것이다. 식당에서는 가볍게 한 잔 하시더라도, 집에서 2차로 마실 것이 쉽게 상상된다. 누가 의도했든 간에 그것이 내가 알고 있는 우리 집의 화합 분위기다.


주종도 취향도 명확하다. 아버지는 고량주나 막걸리, 동생은 소주, 나와 어머니는 맥주. 서로 다른 술병을 끼고 함께 술을 마신다. 애주가, 라는 표현으로 충분할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식사에 반주를 곁들이는 할머니의 유산이 식사자리가 술자리로 이어지는 아버지에 이어 온 가족이 술을 마시는 나에게까지 닿은 것이다.


나는 앞서 나의 철학관에 따라 금주운동을 실천하겠다고 한 바 있는데 이에 가장 큰 저항은 가까운 사람들이다. 사회에서 만난 사이들은 서로 조심하고, 또 잠깐만 참으면 안 보고 말 사이기에 긴 말이 오가지 않는다. 그러나 가족의 경우 하루 이틀 지나다 보면 가족관이 다시 개인관을 침범하고, 또다시 음주문화로 빠지게 되기 쉽다.


매일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시던 주당이, 금주를 선언하면 친구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첫마디는 '헛소리하지 마라.' 일 것이다.


그럼에도 진지하게 이야기한다면 한두 달 정도는 의견을 이해해 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함께 한잔 하자고 제안할 것이다. 그것이 가까운 사이, 소속관, 가족관, 나아가 사회관이 우리를 음주문화로부터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방식이다.


특히나 가족은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가족관에 반하는 선택이 아닌 건강한 삶, 육체뿐만 아닌 정신, 관계적으로 윤택한 삶을 가기 위한 첫걸음이다. 나쁜 버릇을 가족에게 물려받았다면, 그 유산을 포기해야 한다. 이것은 가족을 포기하는 길이 아니다. 죽어가는 가족을 살리기 위한 방법이다.


가족이기에 도우려 하는 것이다. 함께 행복하기 위해서. 그렇기 때문에 충돌하는 것이다. 남이라면 충돌할 일조차 없다. 작은 충돌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상황을 명확하게 파악하고 현명하게 해결한다. 당연하지만 쉽지는 않을 것이다. 가족이라는 이름 하에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통일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선 가족구성원들과 대화를 통해서 서로 추구하는 가족의 삶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 보고, 솔직한 방식으로 음주의 문제점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나 역시 통감하지만 그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나 자신도 끊기 어려운 금주인데 그것이 가족단위로 끊어내기란 더욱 힘든 일이고 오랜 시간의 투자가 필요하다.


조급할 필요는 없다. 문화 수준의 금주는 더 오래 걸릴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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