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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포근한 품이 아닙니다, 식물에게조차도

식물의 치열한 생존 전략

by 낙타

내가 식물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뿌리가 땅에 고정되어 있어서 지금의 자리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줄기나 잎에 근육이 있어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 와중에 초식동물은 다가와서 잎과 열매를 따먹고, 새와 곤충들도 뭔가를 빼가려고 다가옵니다. 같은 처지의 식물들끼리 힘을 뭉쳐 대항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웃한 나무는 도와주기는커녕 불쑥 자라서 햇빛을 가려버리기 일쑤입니다. 이런 가혹한 환경에서 살아남고, 더 나아가 자손까지 남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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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물리적 성벽

초원 들판에서 몸을 숨길 곳이 없는 식물의 기본적인 전략은 초식동물이 먹기 힘들게 하는 것입니다. 쌀이나 옥수수 같은 볏과 식물을 떠올려보면, 잎이 거칠고 질겨서 먹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먹는 건 이 식물의 '씨'입니다) 물론 초식동물도 가만히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이런 거친 잎을 효과적으로 소화할 수 있도록 복잡한 소화 시스템을 발전시켰습니다. 예를 들어, 소는 여러 번 되새김질을 통해 섬유질이 풍부한 식물을 효율적으로 소화합니다. (그러지 못한 종은 멸종해 버렸겠죠.)


좀 더 공격적인 방어 수단으로 가시를 이용하기도 합니다. 같은 가시라도, 장미의 가시는 표피에서 직접 자라난 돌기이고, 선인장의 가시는 잎이 변형된 것, 아카시아의 가시는 줄기나 가지의 일부로서 기원은 다르다고 하네요.


잎을 노리는 건 커다란 초식동물만이 아닙니다. 식물 안으로 침입해서 영양분을 빼먹으려는 병원균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잎 표면을 왁스로 두껍게 코팅하고 물에도 젖지 않도록 해서 이런 작은 적들의 공격에도 방비합니다.


2. 화학무기

두 번째 무기는 독성물질입니다. 그런데 식물 입장에서 생각했을 때, 독을 만드는 이유가 포식자가 이걸 먹고 죽기를 바라서는 아닙니다. 오히려 독이 들었다는 것을 알고 먹지 않기를 기대하는 것이죠. 독버섯은 화려한 색깔로, 또 다른 식물들은 씁쓸한 맛 같은 걸 통해서 이를 드러냅니다.


초식동물은 힘으로 당할 수 없으니까 일종의 벼랑 끝 전술로써 독을 쓰지만, 작은 곤충에게는 독 자체로도 충분히 위협을 줄 수 있습니다. 제라늄 꽃이나 민트의 향기, 양파의 매운맛, 심지어 니코틴 같은 물질은 (적은 양이라면) 인간은 독이라고 생각조차 하지 않지만 곤충에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화학물질이 불쾌함으로 내쫓아버리는 방식만 있는 건 아닙니다. 별별 기상천외한 방법이 있는데요, 성장 촉진 물질을 내뿜어서 유충이 오히려 빨리 성충이 되어 떠나도록 유도하는가 하면, 탄닌 같은 소화불량 물질을 이용해서 곤충의 식욕을 떨어뜨리기도 합니다.


활성산소는 식물이 병원균에 대적하는 무기입니다. 그런데 활성산소는 병원균의 세포뿐만 아니라 식물 자신의 세포에도 손상을 줄 수 있습니다. 식물에 항산화 물질이 많은 이유는, 병원균과의 싸움이 끝난 뒤 남은 활성산소를 제거해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함입니다.


3. 외주 혹은 동맹

외부의 적과 맞서는 데는 비용이 듭니다. 필요한 물질을 전부 직접 만들려다 보면 성장하고 번식할 힘이 남지 않겠죠. 때로는 외부의 힘을 포섭하거나, 손을 잡거나, 이용하는 전략도 필요합니다.

독이 있으면 초식동물에게 먹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독을 만드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죠. 그렇다면? 독을 만드는 균을 식물 안으로 끌어들이면 됩니다. 가라지라는 식물이 실제로 그렇게 했습니다.

식물이 잘 자라려면 질소가 필수인데, 공기 중의 질소를 뽑아내는 일은 어렵습니다. 꼭 직접 해야 할까요? 콩과 식물은 뿌리혹박테리아와의 공생으로 해결했습니다.

이이제이 전략을 쓰는 식물도 있습니다. 곤충계에서 힘깨나 쓴다는 개미를 주위로 불러들여서 다른 곤충이 얼씬거리지 못하게 하는 것인데요, 개미를 유인하기 위해 수분을 위한 꽃 바깥에 개미만을 위한 꿀샘을 따로 둡니다.


4. 역이용

하지만 이 모든 수단에는 반대급부가 있어서, 식물을 먹고 이용하려는 다른 동물들 또한 저마다의 수단을 개발하며 공진화해왔습니다. 그렇다면 먹히지 않으려고 애쓰기만 할 게 아니라, 오히려 이들을 이용해서 자손을 널리 퍼뜨려봅시다.


그러자면 일단 포유류보다는 조류가 유리합니다. 포유류는 씨앗을 이빨로 씹거나 혹은 소화시키면서 망가뜨릴 위험이 크기 때문입니다. 새는 이빨도 없고, 소화기관도 짧습니다. 많은 열매가 붉은색인 이유, 또 일부 열매가 매운맛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영장류를 제외하면 포유류는 빨간색을 인식하지 못하며, 매운맛은 싫어한다고 합니다. 반면에 새는 시각이 발달했고(빨간색에 잘 반응하고), 매운맛을 느끼지도 못하죠. 게다가 날아다니니까 씨를 더 멀리까지 퍼뜨릴 확률이 높습니다.


사실 식물의 적은 초식동물, 벌레, 균만이 아닙니다. 같은 식물끼리도 광합성을 위한 햇빛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 운명입니다. 이 관계는 땅속까지도 이어지는데, 뿌리에서 화학물질을 내뿜어 주변 다른 식물의 발아와 성장을 방해하죠(타감작용). 다른 식물의 목을 조르는 교살식물, 일방적으로 빌붙어 사는 기생식물도 있습니다. 게다가 마지막에는 천적 중의 천적, 끝판왕인 인간이 있죠. 식물은 인간과도 더불어 잘 살 수 있을까요?


지금까지 내용은 『싸우는 식물』을 읽으면서 알게 된 사실 일부를 소개한 것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 정적이고 평화로워 보였던 식물이 사실은 생존을 위해 치열하다 못해 처절하게 싸우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어쩌면 저처럼 식물을 보는 관점이 완전히 바뀌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참고 자료

이나가키 히데히로, 『싸우는 식물』, 김선숙 옮김, 더숲(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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