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것만 남기려는 사람의 욕심이 무언가를 죽인다
쉿! 빨리 들어와. 문 꼭 닫고.
내가 단 둘이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서 그래.
어디 가서 이런 얘기 하면 안 된다?
비밀이야. 약속해, 우리.
어젯밤 아파트 분리수거장에 누가 검은 쓰레기봉투 하나를 버리고 갔대.
때마침 산책 나온 동네 주민이 그걸 봤다는 거야.
시큼하고 비릿한 냄새가 진동을 했대.
그냥 지나갈 수 없었을 거야.
호기심에 가서 봉투를 열어 본 거지.
그 안에는, 놀라지 말고 들어.
죽은 달팽이가 한 무더기 있었다더라.
그 있잖아. 껍데기 없는, 민달팽이 같은 거.
미끈하고 축축한 데다가 어딘가 생기다 만듯한 것이 달팽이를 쏙 빼닮았대.
시뻘건 달팽이.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겠는, 토막 난 건지 그대로인지 알 수가 없는,
핏덩어리.
궁금해서 할머니한테 물어봤지.
할머니, 혹시 빨간 달팽이 본 적 있어?
그럼, 봤다마다.
세상에, 나만 몰랐던 거야?
글쎄 사람이 부정하거나 불운한 일을 겪으면
실타래가 엉키듯이 몸 안에 달팽이가 자란대.
왜 하필 달팽이냐고 할머니한테 물어봤어.
등딱지가 둥근달 같기도 하고, 팽이처럼 도는 모양 같기도 해서 달팽이인데
내가 말한 그건 등딱지가 없잖아.
달팽이인데 달팽이가 아닌 거지.
민달팽이. 웃기지 않니?
달팽이라고 이름 붙여놓고 생긴 게 그게 아니니까 민 자를 붙여.
자기부정의 산실인 거지.
투명하고 물컹한 진실 같은 거.
그래서 그 핏덩어리를 달팽이라고 한다나 뭐라나.
대부분은 몸 안에 그게 있는 줄도 모르고 지나가는데
이게 아닌 경우가 있다는 거야.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지울 수 없는 상처. 뭐 그런 거.
할머니는 시집살이할 때 그걸 봤대.
우리 할머니, 아들을 계속 못 낳아서 고생이 많으셨다지.
온갖 구박을 받으면서 뱃속에 달팽이가 자라는 거야.
답답해서 숨 쉬기도 힘들 만큼.
그렇게 한동안 괴롭힘을 받다가 이제 죽지 않고는 안 되겠다 싶을 때,
바로 그제야 그걸 다 토해낸다지.
달팽이는 그 순간 다 죽어버리고 만다 해.
얼마나 개운할까? 그 해방감!
그리고 뒤늦게 알아차리는 거지.
이 끔찍한 걸 어디다 버리지?
어젯밤에 그걸 내다 버린 사람도 그랬을 거야.
자기가 낳은 이 부끄러운 피조물을 어떻게 처리할까 생각하다가
그걸 쓰레기봉투에 넣어서 분리수거장에다 갖다 버린 거지.
완전 범죄를 꿈꾸면서.
왜 이런 얘기를 너한테 하냐고?
사실 어젯밤에 그걸 본 게 나거든.
어제 그 쓰레기봉투 버린 거.
너 맞지? 맞을 거야.
어두워서 얼굴은 제대로 못 봤지만 네 목소리를 똑똑히 들었어.
사랑하는 우리 아가.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
용서해 줘... 용서해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