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글을 쓰는가
동화들은 대개 “~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끝이 난다. 나는 이야기 속 아름다운 주인공들을 떠올리며 나의 이십 대도 저렇게 낭만적일 수 있겠거니 하는 희망과 함께 잠이 들곤 했다. 하지만 꿈에서 깨고 난 뒤 대면하게 된 현실은 흐릿한 은유들로 범벅인 물안개 같은 나날이었다. 특히나 타인에 대한 고민과 앞날에 대한 걱정은 매일 밤 유령처럼 나를 찾아오곤 했다. 소통과 생존이라는 주제로 써 내려간 내 글은, 슬프게도 동화 속 주인공처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고 싶은 나의 철없는 욕심에서 출발했다.
왜 내 삶은 아름답지 못한가. 달력의 페이지가 넘어갈 때마다 나는 내게 비범한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다못해 나를 비극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줄 어마 무시한 시련조차 벌어지지 않았다. 자기 삶의 주인공은 본인이라고들 말하지만, 내게 주어진 각본은 이름 없고 대사 없는 엑스트라의 것이었다. 스무 살 이후로 나는 철저하게 부서지고, 초라하게 무너졌다. 내 이름을 단 낡아빠진 배는 어느 순간부터 위아래로 출렁일 뿐 나아가지 못한다. 나는 과거에 닻을 내리고 표류하는 이기적인 사람이다.
오래오래 행복하기는커녕 오래오래 글을 쓰겠다는 의지마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더더욱 글을 써야만 했다. 문장 뒤에 숨어 내보이기를 꺼리던 나 자신이지만 흩어진 유리조각들을 모아 거울처럼 나를 비추고자 했다. 내게 글은 밤에 적응하지 못하는 야맹증 환자의 투병기이자 갈 곳 잃은 유리병 편지의 24년 항해일지이다. 각각의 글이 저마다의 육지에 선물처럼 가 닿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여전히 나는 욕심이 많다. 오래오래 행복하게, 당신과 함께, 글을 쓰고자 하는 허무맹랑한 꿈을 아직까지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또다시 나는 타인과의 관계에 실패할 것이고 앞날에 대한 걱정으로 밤을 설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유년기의 밤을 지켜주었던 이야기 속 인물들의 목소리를 기꺼이 따르기로 하였다. 그것이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내 삶을 아름다운 결말로 인양할 유일한 항로가 아닐까. 여전히 나는 별 볼 일 없는 삶을 살고 있지만, 그 철없는 믿음으로 소중한 사람들을 얻을 수 있었고 그들의 이야기를 글 속에 담을 수 있었다.
끊임없이 내 곁에서 자극과 거름이 되어 준 그들께 감사의 말씀드린다. 쉽게 잃어온 만큼 가능한 어렵게 그들을 잊고자 한다. 그들 모두는 내 안 어딘가에 지층처럼 퇴적하여 시간이 지날수록 단단해질 것이다. 철없는 투정에서 출발한 글이 소중한 청자와 독자를 만나 먹음직스러운 빵처럼 부풀어 오를 수 있었다. 이에 다시금 감사를 전한다. 주제넘게도, 주변의 기대와 걱정에 터무니없이 긴 시간 묵비권을 행사해 왔다. 그 오랜 침묵의 시간을 대변해 줄 변호사로 감히 지금 이 글을 고용한다. 부디 오래오래 읽어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