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의 『퀴즈쇼』

이제는 답을 해야 할 때

by StoA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질문을 주고받는다. '오늘 저녁에는 무얼 먹을지'처럼 하루하루 반복되는 소일거리 같은 질문이 있는가 하면, '나는 왜 사는가'와 같이 평생에 걸쳐 답을 구해야 하는 질문도 있다. 우리를 둘러싼 이 무수한 물음들에 시달리다보면, 나 아닌 다른 누군가가 대신 정답을 말해주길 바라곤 한다. 하지만 이 답이 정해지지 않은 퀴즈들로부터 어느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끝이 없는 고민과 물음 앞에서 우리는 평생을 갈등하고 방황하며 살아간다. 삶이라는 망망대해에서 끊임없이 표류하는, 우리들의 인생은 한 편의 퀴즈쇼이다.



『퀴즈쇼』의 주인공 민수는 별 볼 일 없는 대학생이다. 29만 원짜리 월세방에서 취업 준비에 여념인, 너무도 초라해 비극의 주인공이라 말하기도 부끄러운 인물이다. 민수는 내밀한 교감을 나누던 여자 친구 지원 앞에서마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괴로워한다. 그런 그에게 달콤한 제안이 찾아온다. 어마어마한 상금이 걸린 퀴즈쇼에 참가해보라는 권유가 그것이다. 삶의 크고 작은 곡절에 시달려 오던 민수는 순수한 지성(知性)이 겨루는 퀴즈쇼의 모습에 금방 매료되고 만다.

퀴즈에는 언제나 정답이 있다. 처음 민수를 사로잡은 퀴즈쇼의 매력이 바로 그것이다. 정해진 해답을 차근차근 밟아나가면 될 거라고, 컴퓨터처럼 원하는 답을 내놓을 수만 있다면 될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처음에는 틀리는 횟수가 잦아 좌절하기도 하지만 이내 승승장구하기 시작해 제법 큰 수익을 올리기도 한다. 하지만 '회사'라고 일컬어지는, 상금을 걸고 전문적으로 퀴즈를 푸는 비현실적 세계 안에서 민수는 자신이 그토록 외면하고 싶었던 사회의 단면들을 발견하기 시작한다. 때 묻지 않은 지적인 장(場)으로만 생각해오던 퀴즈쇼에서 사람들은 동요하고, 분노하고, 후회하고, 환호했다.


나 또한 초등학교 4학년 때 그리스 로마 신화 퀴즈대회에 참가했던 경험이 있다. 최종 우승자에게는 일주일 간의 그리스·로마 여행이 상품으로 걸려 있었다. 당시 최후의 3인에까지 남았지만 결국 결승 문턱에서 좌절하고 만 기억이 난다. 그때 틀린 '크레타 섬'이라는 답을 아직도 나는 기억에서 지우지 못하고 있다. 문제를 틀렸다는 부끄러운 마음에 나는 얼굴이 새빨개진 채 지켜보시던 부모님 품으로 숨어들 수밖에 없었다. 내가 퀴즈를 싫어하는 이유는 그 때 기억이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승자의 등 뒤에는 패자의 아픔이 새겨져 있고, 성취의 그림자에는 패배의 쓴 맛이 깃들어 있다. 이 가혹한 원리는 그 후로도 자주 나를 괴롭히곤 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은 내가 그토록 싫어하는 퀴즈의 모습을 다분히 닮아있다. 애초에 범람하는 모든 정보를 자유자재로 입출력하는 것은 인간의 뇌를 슈퍼컴퓨터로 대체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에 가깝다. 설령 슈퍼컴퓨터의 힘을 빌린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당장 내일의 날씨를 예측하지 못해 모처럼의 나들이를 망치곤 한다. 퀴즈쇼에서 승승장구하던 민수는 '회사' 사람들과 의도치 않은 갈등에 휘말리게 된다. 퀴즈와는 전혀 무관한, 예측 불가능한 긴장과 마찰이 그곳에도 자리하고 있었다. 결국 '회사'는 사회와 같았다.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 위에서 우리는 쳇바퀴를 돌리는 실험쥐마냥 너무도 무력하다. 무엇이 문제인지, 정답은 또 무엇인지 알지도 못한 채 쉴 새 없이 질문에 대답할 것을 요구받는다. 지친 우리는 질문에 대한 답을 유예하거나 책임을 회피하는데 익숙해져 있다. 갈수록 낮아지는 투표율이 그러하고, 잘못을 떠넘기기 바쁜 공직자들과 자기계발서를 답습하기에 급급한 취업 준비생들이 그러하다. 결국 제 목소리 한 번 내어놓지 못하고 대신 대답해 줄 누군가를 찾거나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를 따라 하기에 연연한다. 들숨만 있고 날숨이 없어 갑갑하다.


살아가는 데 정답은 없다. 그러나 정답이 없다는 것을 이유로 대답을 회피하는 것은 직무 유기와 다름없다. 정답이 없어서 대답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정답을 맞히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함이 대답을 보류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민수가 회사에서 배운 점도 이와 같았다. 책임이 따르지 않는 대답은 그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퀴즈처럼 정해져 있는 답을 내놓는 일이야 말로 불완전한 우리에게 있어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살아가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질문에 응답해야 한다고 세상은 이야기한다. 회사를 나온 민수가 재회한 여자 친구 지원에게 말한다.


그렇지만 거기서 배운 것은 하나 있어.
그게 뭔데?
세상 어디에도 도망갈 곳은 없다는 거. 인간은 변하지 않고 문제는 반복되고 세상은 똑같다는 거야. 거긴 정말 이상한 곳이었는데, 처음에만 그랬을 뿐, 적응하고 나니 하나도 다른 게 없었어.


어린아이는 수없이 질문을 한다. 세상 모든 것이 새롭고 낯설기 때문에 "왜"냐는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세상은 모르는 것투성이, 내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투성이였다. 퀴즈대회에서 고배를 마셨던 어린아이는 도대체 세상은 왜 그런 거냐며 누군가 답해주길 바라는 철없는 질문을 던지곤 했다. 하지만 대답해 주는 이 아무도 없었다. 부모님과 친구들의 심심한 위로만이 주변을 맴돌았다.

회사를 나온 민수는 동네 헌 책방에 일자리를 구하러 간다. 이내 책방 일층의 골방에 세 들어 살기 시작한다. 헌 책방은 긴 시간 살아남은 책들의 냄새로 가득한 곳이다. 그 곳에서 민수는 대답을 준비해 나갈 것이다. 세상의 중력 속에 스스로를 내던져 두 발로 딛고 일어서 살아갈 것이다.


나는 나를 사랑한다. 다른 모든 사람들이 나를 떠나고 외면하는 최후의 최후에 순간, 유일하게 내 곁에 남아 내게 드리워질 나의 그림자를 나는 사랑한다. 사랑할 수밖에 없다. 내가 내린 선택을, 내가 걸어온 거리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 위로 도장 찍히듯 파여 있는 발자국의 궤적과 그림자의 그을음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이제는 질문에 답해야 할 때이다. 오이디푸스가 스핑크스의 퀴즈를 풀어내고 인간으로서 자신의 숙명을 한 발 한 발 걸어간 것처럼, 답은 온전히 자신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