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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oA Jan 19. 2016

그래비티와 인터스텔라

우주 속에서 살아남기

 요즈음 우리의 대화는 누가 더 비루하고 찌질한 인물인지 경쟁하는 우스꽝스런 모양새를 하고 있다. 스무 살 때 꿈꾸었던 영화 속 주인공은 온 데 간 데 없고 지지리도 궁상맞은 삼류 콩트 같은 하루만이 남아있는 것이다. 나의 하루와 우리의 관계가 한 편의 잘 짜인 음악이 되길 기대하지만, 현실은 화음 없는 언어들의 파편에 그칠 뿐이다. 막은 서서히 내려가고 조명은 아스라이 사그라지는데, 반주 없는 무대 위를 나는 왜 떠나지 못하는지.                                                                              - 스물 한 살의 편지 中

 사는 게 참 구질구질합니다. 나를 둘러싼 세상은 나날이 제 몸집을 불려 가는데, 내 자신은 갈수록 빛을 잃고 작아져만 갑니다. 별 볼 일 없는 사람이 되지 말자고 스스로를 다잡아보지만, 밤하늘의 별 한 번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하루가 우리를 별 볼 일 없는 삶으로 끌고 갑니다. 살아가는 게 살아가는 것 같지 않다고 느낄 때 세상은 가혹한 사막이자 아찔한 우주가 되어 우리를 집어삼킵니다.


 우주에 맞서는 두 영화가 있습니다. 2013년에는 그래비티가, 2014년에는 인터스텔라가 관객들을 신선한 충격에 빠트렸습니다. 그래비티가 극한의 우주에서 중력이 지배하는 지구에게로 하강하는 영화라면, 인터스텔라는 극한의 지구에서 미지의 우주에게로 상승하는 영화입니다. 정반대의 방향을 취하지만 목적은 같습니다. 바로 생존입니다.

 그래비티에서 주인공 스톤 박사는 아들을 잃은 엄마입니다. 그녀에게 지구는 죽은 아들에 대한 기억으로 괴롭기만 한 곳입니다. 듣지도 않는 라디오를 켜고 목적지도 정하지 않은 채 자동차를 타고 하염없이 달렸다는 말에는 어떠한 삶의 의지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저 흐느끼고, 고개 숙일 뿐이지요. 그런 그녀에게 우주는 고요한 평화와 같습니다. 애증의 땅인 지구를 저 멀리 내려다보며 맡은 임무에만 집중할 수 있는, 그렇게 스스로를 옭아매던 중력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는 곳이지요.

 하지만 현실은 우리를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도망치듯 자리한 우주에서조차 그녀는 그저 같은 궤도에 있었다는 이유로 끔찍한 재난의 현장에 휘말립니다. 마치 영원한 평안은 죽음 이후에야 찾아온다고 이야기하듯, 이 고통과 슬픔의 역사는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칩니다.


불행한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 아냐.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는 뜻이지.


 인터스텔라에서 인류의 운명을 짊어진 아버지 쿠퍼는 딸 머피에게 그 불길한 이름의 의미를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딸 머피에 대한 쿠퍼의 대가 없는 사랑은, 어쩌면 일어날 일은 일어날 거라는 극진한 믿음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보잘 것 없는 현실 속에서 꿈과 희망을 품어야만 하는 이유를 말이지요. 인터스텔라가 말하는 머피의 법칙은 결과론적인 징크스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연으로 점철된 세상에서 필연을 만들어가고자 하는 삶의 의지를 의미합니다. 일어날 일을 일어나게끔 만드는 생(生)에의 의지가 허무주의로 치닫는 우리의 인생을 건져올릴 것입니다.


 그렇게 영화 속 인물들은 중력 속에 스스로를 내던집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와 마찬가지로요. 불확실한 미래는 언제나 우리를 불안에 떨게 만들고 실패의 기억은 끊임없이 재생산되어 우리를 무력감에 사로잡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살고자 합니다. 의미 없는 발버둥에 그칠지라도 가라앉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헤엄치고, 사라져버릴 반짝임에 불과하더라도 끊임없이 빛을 내고자 합니다.

 사는 게 참 구질구질합니다. 답이 정해지지 않은 선택들, 예상치 못한 사건들, 이들로부터 비롯한 불안한 미래가 우리를 쉴 새 없이 끌어내리고 휘청거리게 만듭니다. 하지만 우리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산다는 건 중력을 몸 안에 받아들이는 일이라는 걸요. 그 긴장과 마찰이 우리를 살아 반짝이게 만들어 준다고요. 우리는 중력을 딛고 일어서 지면을 밀고 나아가야합니다. 살아남기 위해서, 살아가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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