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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oA Feb 25. 2017

증언

세상 모든 을의 관계를 위하여

유명한 퀴즈가 있다. 마을에서 사람이 죽었고 용의자는 네 명으로 추려졌다. 그들 모두는 저마다 알리바이를 가지고 있다. 이때, 단 한 사람의 증언만이 진실이라면 그들 중 범인은 누구인가. 뭐 이런 식의 것들. 이런 유형의 퀴즈는 대개 논리학의 범주에서 해결되곤 한다. 가정과 추론을 통해 답은 하나로 수렴한다.


현실도 그런가? 위의 문제는 용의자를 네 명 중 한 사람으로 한정하는 정보의 구체화, 그중 한 명의 증언이 진실이라는 진정성의 확보, 그리고... 운이 따른다. 진실인 하나의 증언과 거짓인 세 개의 증언이 논리적으로 단 한 사람의 범인을 가리키고 마는 사건의 우연적 필연. 하지만 안타깝게도 인생은 실전이고, 실전은 퀴즈처럼 호락호락하지 않다. 관련 정보는 범람하고 운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결국 진정성이다.


진정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어떤 사람은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신뢰도 100에서 시작하는 사람이 있다. 그에 반해 0에서 시작해 100을 향해 축적해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후자에 가깝다. 느린 만큼 신중하고 단단한 관계를, 그 공고한 성을 쌓는 일을 나는 지향한다.


프린세스 메이커와 같은 고전 육성 게임을 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관계 혹은 신뢰의 축적이 있어야 유의미한 스토리가 진행된다. 그것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나의 노력과 시도는 번번이 빗나간다. 이야기의 진행과 관계의 발전을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관찰하는 시간, 함께 하는 시간, 이해하는 시간. 요즘 정치판에서 '검증'이라고 하는 것과도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누군가를 검증하는 것. 진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우리 모두는 부단히 검증하고 동시에 검증받아야 한다.


내가 한 사람을 이야기하는 데 이렇게 장황한 말을 붙인 까닭도 여기에 있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와 긴 시간을 축적하지 못했다. 축적하지 않은 건가? 중요치 않다. 그는 온 국민의 검증 대상인 정치인 하고는 거리가 멀다. 살인 사건의 용의자가 되는 일은 더더욱 없을 것이다. 그렇게 추측해 본다.


그와 나는 그런 어중간한 단계에 있다. 0과 100 사이 38, 47, 52, 61 같은 애매한 숫자들. 그는 내가 하는 글쓰기 모임에 자주 참여하곤 하지만 그것이 우리 관계를 진작시키는지는 의문이다. 고마우면서도 미안할 따름이다. 그는 (아마도) 오늘 글쓰기 모임에 참석해 남들보다는 적은 횟수의 말을 꺼낼 것이다. 나는 그 말의 진실과 거짓을 혼자서 따져 보겠지. 하지만 답을 내릴 수 없을 것이다. 그만큼 모르는 것이 너무도 많기에.


상상을 해 본다. 대선 투표지에 그의 이름이 적혀 있다. 무소속 9번쯤으로. 또는 이런 상상을 한다. 마을에서 사람이 죽었고 그가 용의자 중 한 명으로 지목된 것이다. 나는 그를 위해 무슨 증언을 할 수 있을까. 내가 기억하는 그는 노래 부르는 사람이다. 김광석 노래를 잘 부르던 사람. 아니지, 단순히 잘 부른다고만 하면 안되지. 방송에 버젓이 나와 노래하는 인성 쓰레기들도 많은 걸. 나는 그를 다시 정의한다. 진정성 있게 노래하던 사람. 언제 그랑 밥도 같이 먹고 얘기도 좀 더 해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네요. 걔가 사람을 죽였다고요? 그럴 애가 아닌데.


그렇게 증언할 것이다. 내 한 표가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지는 못하겠지만. 그것이 그가 보여 준 진정성에 대한 나의 작은 성의이다.



위 글은 글쓰기개론 8주차 주제로 선정된 한 친구를 대상으로 쓴 글이다. 우리는 각자의 이름을 적어 낸 뒤 하나씩 뽑아 그 사람을 주제로 글을 썼다. 하지만 나는 이것을 어느 한 명의 이야기로 한정 짓고 싶지 않다. 논리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 땅의 진정성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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