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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oA Jul 10. 2024

이열치열

충돌과 마찰에 대한 짧은 단편

1.

"더워보여."

"뭐?"

"너 오늘 옷 입은 거. 보는 내가 다 덥다고."

"나는 안 더운데? 봐, 이마에 땀 한 방울 없는 걸."

"그 말이 아니잖아. 양말은 왜 또 하필 검은 색인건데."

"누가 들으면 니삭스라도 신은 줄 알겠네."

A는 항변하듯 한 쪽 발을 들어 올린다.

검정 페이크 삭스가 흰색 단화와 복숭아 뼈 사이로 살짝 삐져나와있다.

"하여튼 마음에 안들어. 답답해."

"그래, 네 말 들으니까 나도 슬슬 더운 거 같다."

"보는 사람이 마음에 안 든다는데, 그거 고치는 게 어디 덧나니?"

"그래, 덧난다."



2.

"여기 오뎅 하나 주세요. 500원 짜리."

"거기 앞에, 꼬챙이 끄트머리 파란 걸로 골라드세요. 그게 제일 싼 거야."

"500원 맞죠? 파란 게 500원?"

"예, 예."

주인은 건성으로 대답하고 자리에 앉는다.

매대를 반으로 갈라 한 쪽은 어묵, 한 쪽은 떡볶이.

떡볶이는 한 번 볶아 놓고 오랫동안 방치한듯 검붉은 색인 채로 질펀하게 굳어 있다.

"아, 이 집 오뎅 참 맛있네. 여기 국물도 좀 주쇼. 이 집은 분식집이 아니라 오뎅집을 해야 돼. 클클."

"비싼 어묵 가져다 쓰면 뭐해요? 여름에는 파리만 날리는 걸."

"뭘 모르고 하는 소리야. 더운 날에 먹는 오뎅 국물이 또 기가 막히지."

주인은 대꾸하기를 관두었다. 저런 진상은 상대하지 않는 것이 편하다.

수 년 간의 분식 장사를 하면서 숱한 손님을 받아왔기에 가능한 대처다.

여름 날에는 매출이 30% 가까이 떨어진다는 것도, 매 해 겪어 온 익숙한 일이다.

그렇다고 문을 닫을 순 없지. 날이 더 더워지기 전에 팥빙수나 개시해 볼까.

"아, 여기 국물 좀 달라고. 몇 번 말해?"

"거기 앞에 종이컵이랑 국자 갖고 알아서 떠 드세요, 좀."

손님은 클클거리며, 비웃는 건지 불만인 건지 모르겠는, 알 수 없는 소리를 되뇌다가

이내 손수 뜬 어묵 국물을 잔망스럽게 홀짝인다.

"크흐으으, 좋-타."

주인은 두 눈을 질끈 감는다.


3.

"으어, 시원하다."

"아빠, 아빠는 그게 뭐가 시원해?"

"너는 아직 어려서 그래. 이게 이열치열이라는 거야. 너도 나이 먹으면 아빠가 왜 그랬는지 알거다."

"몰라, 나는. 그냥 뜨겁기만 한데."

아들은 호기심이 동한 듯 열탕에 손을 집어넣었다가,

만져선 안 될 것을 만지기라도 한 듯 서둘러 손을 뺀다.

"아뜨뜨."

"너는 저기 냉탕에서나 놀아라."

"오예."

아빠는 신이 나서 달려가는 아들의 발가벗은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몸뚱아리를 더 진득히, 아직 채 식지 않은 탕 깊은 곳에 가 적신다.

"어흐, 시원-하다."

언젠간 아들과 같이 열탕에 들어가야지. 이열치열이라고 하지 않았나.

내 새끼라면 모름지기, 이 정도 뜨거움은 뜨거운 것도 아닐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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