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먹는 게 지친 신입사원들에게
회사생활을 하면서 나는 보고서를 참 못 쓰는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지금은 보고서를 잘 쓰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수많은 영상 기획서와 보고서를 쓰고, 다른 사람들의 보고서를 보면서 이 이야기는 꼭 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내가 쓴 보고서는 욕을 먹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먼저 하자면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라'는 것이다. 가령 A라는 주제로 보고서를 쓴다고 가정해보자. 해당 주제의 관련 내용들을 정리해서 보고서 초안을 작성해서 상사에게 가져가면 대부분의 상사들은 지적을 하기 시작한다. 물론 그게 맞는 말일 경우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다. 이런 지적들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싶다.
'최초'에 대한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 있다
누구든 처음 글을 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예가 맞을지 모르겠다. 한 교수가 쓴 책이 있다. 그 책이 출판된 지 오래되어 책 속의 데이터는 10년도 더 지난 데이터들이다. 그래서 그 책을 업데이트하기로 했다. 그런데 업데이트를 할 때 기존의 목차와 큰 틀을 바꾸지 않는 선에서 한다며? 당연히 업데이트 작업은 새로 글을 쓰는 것보다 훨씬 수월할 것이다.
마찬가지다. 보고서를 처음 작성한 버전은 말 그대로 초안이다. 엉성할 수도 내용이 부실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서로 의견을 조율해 고쳐나가야 하는 것이지, '이 따위로 썼어', '이게 보고서야?'라고 하는 상사는 '최초'라는 개념이 없는 사람으로 밖에 안 보인다.
직급이 올라가고, 국내 사업부문 기획팀에서 일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쓴 보고서를 정리하고 취합하며 내가 느낀 것은 팀장들이 쓴 보고서도 참 엉망이 구나였다. 이렇게 남이 쓴 보고서를 지적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물론 그마저도 제대로 못하고, 폭언과 폭설을 하는 상사들이 있다는 게 씁쓸할 뿐이다.
'피드백 증후군'이라는 병이 있을 수도 있다
가끔 보면 그런 걸 느낀다. 사전에 다 협의가 되었고, 기본적인 틀이 다 잡혀있는 상태에서 첫 결과물인 영상 초안이 나왔다. 영상 또한 초안이니 수많은 수정 작업을 피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간혹 엄청 폭언과 폭설을 하며 지적하신 상사의 의견을 열심히 반영하여 진행하다 보면, 결과적으로 최종본은 처음 가져간 초안과 차이가 없이 돌아오고는 한다. 이 말이 무슨 말일까?
그 영상이 과연 문제가 많아서 그랬던 것일까? 아니다. 내가 그룹에서 일할 때 계셨던 분들 중에는 재미있게도 '피드백 증후군'에 걸린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았다. 초안에 큰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도 일단 처음 버전은 까고 보는 것이다. 그래야 자신이 이 프로젝트에서 우위를 점하는 거라 생각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영상 제작 비용도 마찬가지다. 일단 처음 버전을 가져가면 절반부터 시작한다. 협력업체와의 신뢰가 완전 꽝이거나, 그래야 내가 비용을 깎았다는 자신이 속한 조직에 생색내기용이거나.
어쨌든 그러다 보니 협력업체 비용은 처음부터 높게 시작을 하고, 초안은 대충 만들어오고, 끊임없이 수정하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비용을 깎았다고, 많이 지적을 했다고 조직에서 전문가로 인정을 받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회사생활의 일면이 아닐까 싶다.
지적(指摘)한다고 지적(知的)으로 보이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