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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우 Sep 22. 2015

다육이

키우는 재주가 없는 내가

다육 화분을 선물 받았다.


생각날 때 가끔

물만 주면 된다는 말에

모니터 앞자리를 내주었지만

젖먹이를 떠맡은 아빠처럼

불안하고 후회스럽다.


퇴근 무렵 컵에 남은,

버리기도 귀찮은 그 물을

화분에 조금씩 따른다.

그것도 반가운지

다육은 온몸을 흔들며

물방울을 구석구석 굴리고 있다.


주인의 게으름을

생명수로 받으면서도

녀석은 신기하게 잘 자랐다.

물을 준 다음날엔

윤기까지 온몸에 흘러

키우는 재미를 느끼게 한다.


물 없고 빛 적은 땅에서도

온전히 살아남기 위해

수수한 모양새로 평생을 사는 식물.

베푸는 게 없는데도

잔잔한 감동을 되돌려준다.


이 척박한 세상에서

다육처럼 버티는 날,

신(神)도 대견해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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