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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우 Jul 08. 2015

타인의 취향

무지개는 일곱색이어서 아름답다

사랑을 하면 상대방을 닮아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상대방의 취향에 익숙해지고, 그것을 공유하면서 두 사람의 사이가 더욱 가까워지는 것이겠죠. 가끔 길거리에서 유치한(?) 커플룩을 입은 연인들을 마주치게 될 때마다, 그러한 말이 사실임을 절감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들의 취향이 전적으로 어느 한 사람의 것에 기울어져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다른 한 사람은 자신의 취향을 버리고 상대방의 취향에 자신을 맞춰 가야 할 것입니다. 온전한 자신을 버리게 되는 셈이죠. 롭 라이너의 <스토리 오브 어스>에서 케이티(미셸 파이퍼 분)가 말한 것처럼, 어느 한 사람은 '해롤드의 마술 크레용’으로 자기가 원하는 세상을 그려 가고, 다른 한 사람은 전적으로 상대방이 그려 가는 세상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야만 하는 겁니다.

<타인의 취향>은 이와 같은 물음과 그에 대한 해답을 보여 주는 영화입니다. 주인공인 까스텔라(장 피에르 바크리 분)는 우리 주위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그런 인물입니다. 경제적으로는 풍족하지만 일상에서 활력을 찾아볼 수 없는 중년의 남자이지요. 사업적인 면에서도 그리 능력이 있어 보이지 않아 유능한 부하 직원에게 자주 혼이 납니다. 또한, 가정에서는 독특한 자기 취향을 지닌 아내 앙젤리끄(크리스티안느 밀레 분)에게 늘 구박을 받으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결국, 그의 생활에서 그 자신을 발견하기란 어려운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타인의 욕구에 적당히 타협하며 둥글게 둥글게 생활하며 그는 현실에 지쳐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지루한 연극을 보다가 사랑의 대상을 만나게 됩니다. 연극의 주연 배우인 끌라라(안느 알바로 분)의 연기에 빠져 들게 된 것이지요. 그는 이미 끌라라를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끌라라는 그가 사업상 필요한 영어를 배우기 위해 소개받은 개인 교사였죠. 첫 만남에서 그는 일상의 일을 처리하듯 무덤덤한 태도로 끌라라에게 다음에 연락하겠다는 통보만을 남기고 맙니다. 그러던 그가 끌라라의 연기를 보고 사랑을 느꼈다는 것은, 끌라라가 그의 내면에 잠재된 욕구를 환기시키는 존재로서 그에게 중요한 대상이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겠죠. 까스텔라는 끌라라를 통해 잊고 지내던 자신의 내면에 눈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 짜릿한 만남을 계기로 끌라라의 제자가 된 그는 연극도 보고 그림도 보러 다니며 관심을 끌어 보려 하지만, 워낙 그 방면에 대해서 문외한이었던 그는 오히려 비웃음만 사게 됩니다. 하지만 새로운 삶의 재미를 맛본 까스텔라는 그러한 시도들을 그치지 않고 점차 연극, 그림, 문학 등을 접하면서 타인의 것이 아닌 자신의 취향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사랑을 이루는 데 필요한 자세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까스텔라가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사랑을 느끼는 상대를 만났을 때 그의 취향에 자신을 맞추려고 합니다. 그가 좋아하는 음식을 좋아하게 되고, 그가 좋아하는 곳을 주로 찾게 되죠. 그렇게 스스로 타인의 취향에 길들어져 갑니다. 그 결과는 까스텔라가 그의 아내에게 느끼는 것과 같은 권태와 욕구 불만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끌라라가 까스텔라의 사랑을 믿지 못했던 것처럼 일시적인 구애의 노력으로 비칠 수도 있겠죠.

우디 앨런의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에서 조(우디 알렌 분)가 딸인 디제이(나타샤 리온 분)의 도움으로 폰(줄리아 로버츠 분)의 모든 것(정신과 상담에서 털어 놓은 그녀의 은밀한 고백들)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실연당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온전한 자기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사랑은 이루어지기 어렵습니다. 이루어지더라도 그 유효 기간이 너무도 짧은 것이겠죠. 자기 자신의 취향과 타인의 취향이 각각의 모습으로 조화를 이루고 존중될 수 있을 때, 그 사랑은 일곱색이어서 아름다운 무지개처럼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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