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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우 Oct 27. 2015

화 내지 않기

이어폰 한쪽의 고무캡이 사라져서

그걸 찾다 평소보다 10분 늦게 나와서

나와 보니 비가 와서 우산을 챙겨야 해서

우산에 씌운 비닐봉지가 전철 탈 때 벗겨져서

옆 자리의 남자가 굵은 다리를 쫙 벌리고 앉아서

그만 화가 나 버렸다.


혼잣말로 욕을 한 후에

아침부터 화를 내는 나를 반성한다.

그래서 남은 하루는

화를 내지 않고 보내기로 한다.


후안무치한 정치인의 망언을 듣고도

표리부동한 사기꾼의 행태를 보고도

가렴주구의 명세표에 화들짝 놀라도

안하무인인 가진자가 시건방 떨어도

인면수심의 범죄들이 지면을 덮어도

끝내 화를 내지 않는다.


하루의 다짐을 잘 지킨 순간,

가슴속에서 뜨거운 것이 치민다.


이런 세상에도 화를 내지 않는 나에게

화를 내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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