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철
참 오랜만이지?
비가 온다. 온종일.
늘 가방 속에 우산을 넣고 다녔어.
언제부턴가 시도 때도 없이 비가 내렸었잖아.
아주 많이, 소나기처럼.
갑자기 비가 내릴 때, 우산을 꺼내면
사람들이 깜짝 놀라곤 했었지.
그 재미에 우산을 챙기다가
꺼내놓는 걸 잊었던 거야.
그 우산을 며칠 전에 꺼냈어.
요즘엔 통 비가 오지 않으니까.
그렇게 뜸했던 비가 내린다. 온종일.
비가 오니까 참 좋다.
먼지투성이 세상이 투명해지고 있어.
가로수들이 남은 잎들을 다 털어 내고 있더라.
자기들도 투명해지려고 마음을 먹은 건지...
그래, 비가 오니까
하늘에 가까운 것들은 깨끗해지는데
땅바닥에는 젖은 흙과 낙엽이
어지럽게 뒤섞이고 있어.
내 가슴속에도 여러 가지 감정들이 복잡하다.
먹고사는 일의 버거움에
갈수록 세상일에 무뎌지는 것.
당장의 문제에 급급해서
인생의 목표가 흐려지는 것.
마음에 빗물이 잔뜩 스미고 있어.
금세 무거워지고 있다. 온몸이.
그래도 비가 오니까 참 좋다.
빗소리에 숨어서 잠시 울 수도 있으니까.
눈물도 빗물에 흘려 보내고...
서울도 비가 오면 괜찮은 도시지?
먼지투성이 세상도
걱정투성이 내 맘도
조금은 후련해지니까.